[시사진단]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가톨릭평화신문 2021.05.30 발행 [1615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전운이 감돌았다. 아니, 이미 격렬한 교전이 진행 중이었고, 전면전에 대한 우려가 커가는 과정이었다. 열하루 만에 조건 없이 휴전이 이루어지면서 하마스의 로켓포와 이스라엘군의 공습은 멈췄다. 2014년 7주간의 ‘가자 전쟁’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던 시각에서는 한결 다행이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린아이들, 무고한 주민들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에서는 24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도 10명 넘게 사망자가 나왔다. 부상자는 2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왜 죽고 다쳐야 했는가?
사건의 발단은 이슬람의 중요한 연중행사인 라마단 기간 동예루살렘 성전산에 있는 알아크사 사원에서의 사건 때문으로 전해진다. 팔레스타인의 무슬림들은 사원에서 집회하고 있었고, 사원 아래쪽 통곡의 벽에서는 이스라엘 유다인들의 집회가 있었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연설하는데 위쪽 사원에서 소음이 들려오자 이스라엘 경찰이 알아크사 사원에 들어가 무슬림 측 확성기를 꺼버렸다. 모욕감을 크게 느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주민을 공격하고, 쌍방의 충돌이 커지다가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이 시작되고 이스라엘 공군은 가자지구를 공습하기에 이른다.
또 다른 원인을 진단하는 시각도 있다. 동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행정 조치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주거를 제한하면서 쫓겨나는 사람이 많아지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 아닐까 이미 불안과 공포가 커지던 팔레스타인 주민의 분노가 폭발 지경으로 끓어올라 있었다는 분석이다.
늘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 지역의 갈등이 터져 나올 때 원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은 없다. 이미 물과 기름, 얼음과 불의 강한 대립 기류가 일상의 대기를 형성해온 지가 오래되었으니 말이다.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물 밑 빙산의 덩어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 실상은 참으로 참담하다. 세계대전 후 민족주의, 특히 열강에 억압됐던 약소국들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정치·외교적 국가의 재구성이 이루어진 역사 속에 오랜 문명의 충돌 이슈인 종교적 이유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증오, 분노, 분쟁, 전쟁, 살상의 배경에 종교를 놓을 수 있다니, 놓아야 한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신앙, 종교적 믿음을 가진 이들은 저마다 애독하고 마음에 품는 경전의 구절들이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제일은 사랑이라.”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 그런데 신이 인간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여러 가르침, 예를 들어 십계명과 같은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지침은 공동체의 규약이 되고, 법과 제도의 철학적 기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신비롭고 고귀하지 않은 가르침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마는 지구에서 여행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지침이 있다면 필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하나의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종교란 살상의 이유가 되어선 안 되며 오히려 그 어떤 이유로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위기에 처한 생명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는 동력이어야 한다. 한 생명의 소멸은 신이 창조한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다가 자기 나라의 군경에 의해 파괴된 세계가 800명을 넘었다는 참담한 소식이 들려온다. 인도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하루 사망자가 4000명을 넘었다. 이미 약 30만 명의 세계가 바이러스 때문에 의료적 대응역량 부족 때문에 안타깝게 스러져 갔다. 종교와 신앙을 이야기하려면 이를 위해 기도하고, 이를 위해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
'<가톨릭 관련> > ◆ 가톨릭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후는 공공재입니다] (7) 기후 활동가 킹스턴 할아버지를 아시나요? (0) | 2021.05.31 |
---|---|
[박노해 사진 에세이 길] 베두인 소녀 (0) | 2021.05.31 |
[민족·화해·일치] 날 선 반응 속에서도 기대해 보는 것들 (0) | 2021.05.30 |
[신앙인의 눈] 서로 얼굴만 보아도 흥겨운 못난이가 됩시다 (0) | 2021.05.29 |
[정형준의 병적 징후] 편의성에 감춰진 위협, 개인건강정보 유출 (0) | 2021.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