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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류지현, 안나, 아나운서·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1.07.04 발행 [1620호]
살면서 참 하기 힘든 말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겐 “노(no, 아니오)”라는 말입니다. 제안하거나 부탁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의미가 헤아려져, “아니오, 안 돼요”란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좀 더 수고하면 되지” 하며 고려했다가 버거운 짐에 헉헉대는 경우가 종종 있어, “무리하지 말고 이번엔 단호하게 거절해 보자” 다짐하면서도 실천이 잘 안 되곤 합니다.
얼마 전 번역한 책의 내용 가운데 있었던 “유감스럽지만 거절하라”는 젊은 작가의 조언이 마치 제게 얘기하는 듯 일침을 가하며, “앞으로는 꼭 잘 실천해 보리라” 또다시 마음을 다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이삭’ 원고 요청에 또 결심이 무너지고 결국 다소곳하게 “예”란 대답을 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고민이 밀려왔습니다. 결심이 무너진 데 대한 자책감(?)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삼고 싶은 이유가 마음에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마침 기한을 앞둔 여러 일이 겹치는 시기였고, 사실 유아 세례를 받은 이후 평생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제 신앙의 고백을 만인에게 공개하는 것에 덜컥 부담이 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여러 해 전의 어느 날, “식사 때 늘 성호 긋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한 동료의 얘기가 제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기억이 상기됐습니다. 저의 작은 신앙 표현 하나가 그 누군가에겐 가톨릭 신자에 대한 인상과 영향이 되고, 누구든 어디선가 지켜볼 수 있으니 “늘 당당히 표현하자”라고 책임감을 느끼게 한 경험이었습니다. “맞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누군가에게 그 작은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의 소리를 전해야지”란 생각에 이르자 불필요한 염려와 변명이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루카 복음 10장 38~42절에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비유’ 말씀이 떠오릅니다. 주님 모실 준비로 분주한 마르타와 달리 주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만 집중한 마리아에 대해 예수님은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라고 하십니다.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마다 혼자 일하고 수고한 마르타의 심정이 되어 마리아가 야속하게 느껴지고 예수님의 판단이 불합리하게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되새겨 보며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숙고하게 됩니다.
“예”와 “아니, 안 돼요”를 현명하게 말하는 것은 결국 그 순간 ‘어떤 것에 집중할까’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그것’을 선택하는 지혜와 함께 말이죠. 그리고 그 지혜는 주님께서 이끌어주시리라는 믿음과 어떻게든 해내도록 하실 거란 하느님 빽을 은근히 믿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하느님 빽에 내어 맡기어 좋은 몫을 선택하는 것’일 뿐,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가장 든든한 힘인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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