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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편지로 살펴본 사제 김대건의 영성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4.

편지로 살펴본 사제 김대건의 영성

“사랑 잊지 말고 서로 돌보며, 하느님 자비하신 때를 기다려라”

가톨릭평화신문 2021.07.04 발행 [1620호]

 

 

 

 

 

7월 5일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기념일이다. 한국 교회는 과거 순교자 현양을 위해 이날을 대축일로 지냈다. 하지만 한국 주교회의는 2015년 교황청 경신성사성 의견을 받아들여 「로마 미사 경본」과 「전례력」에 따라 이날을 대축일이 아닌 신심 미사로 봉헌키로 했다. 아울러 주교회의는 2019년 가을 정기총회에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를 ‘신심(기원) 1등급’으로 정해 성대히 기념하며, 연중 시기 주일과 겹치더라도 전례적으로 이날을 기념하도록 결정했다.

 

올해 이날은 김대건 성인 탄생 200주년 희년에 맞는 기념일이어서 더욱 뜻깊다. 이날을 기념해 한국 교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고 자기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묵상할 수 있는 김대건 성인의 편지 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김대건 성인의 편지는 그의 피눈물 나는 활동기이자 하느님께 봉헌한 고백록이다. 성인이 남긴 글은 오늘도 신앙의 향기를 전하며 사제들과 신자들을 하느님께 봉헌된 삶으로 이끈다. 김대건 성인이 남긴 글을 통해 순교에 이르는 그의 신앙 여정을 따라가며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우리 가운데 살아있는 성인의 면모를 오늘에 되살려 본다.

 

▲“상황이 불확실한 가운데 메스트르 신부님과 저는 12월 20일을 기해 조선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연락원들과 다른 사람들은 이 계획이 무모하고 극히 위험한 일이라고 단언하면서 조선과의 연락은, 하느님께서 큰 기적을 행하시지 아니하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우리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우리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을 계획하고 있느니만큼, 조선에 들어갈 가능성만 있다면 무슨 위험인들 마다하겠습니까?…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은혜로 위험 중에 무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1842년 12월 9일 요동 백가점에서 파리외방전교회 마카오 극동대표부장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대건 성인은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임을 밝힌다. 성인의 꿈은 우리 민족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 신앙으로 고백하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눈이 사방에 깊이 쌓여 산촌이 모두 하얗고 싸늘한데 밤이 되기를 기다리자니 너무나 지루하여 묵주기도를 수없이 거듭하였습니다. 해가 지고 천지가 어둠에 잠겼을 때, 하느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그곳을 떠나 읍내로 향해 가는데, 발소리마저 없게 하려고 신발을 벗고 걸어갔습니다. 강들을 건너고 길도 아닌 험한 곳을 달려갔습니다. 어떤 곳은 눈이 바람에 불려 다섯 자(1m 50㎝) 혹은 열 자(3m)나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저는 추위와 굶주림과 피로와 근심에 억눌려 기진맥진하여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거름더미 옆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고 오로지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고대하면서 먼동이 틀 때까지 녹초가 된 채 있었습니다.”(1845년 3월 27일 한양 돌우물골에서 마카오 극동대표부장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대건 성인이 부제품을 받은 직후 1844년 12월 말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입국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평균 기온 영하 20~30℃의 엄동설한 한밤중에 꽁꽁 언 강을 건너고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초인적인 인내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녹초가 돼 거름더미에 쓰러질 만큼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잘 알고 있던 김대건 성인은 묵주기도를 하며 성모님께 의탁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린 것은 이뤄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한 생을 바친 김대건 성인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삶을 살았다.

 

▲“외교인들은 우리 종교의 진리를 깨닫고 하느님께로 귀화하는 사람이 매우 많으며, 그중에는 몇 마디 권고를 듣고서 즉시 입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전부터 우리 종교의 진리를 들어 보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니, 지금 누가 용감히 나서서 그들에게 전교만 하면 종교를 수용할 사람이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현재를 위해서나 장래를 위해서나 이곳 형편을 위해서, 북방의 길을 열어 놓는 일이나 강남으로 출발할 일을 생각하면 제가 준비해야 할 것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병으로 허약해진 몸이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병중에 무능해진 저는 다만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1845년 4월 7일 한양에서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확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이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는 주님을 말씀을 누구보다도 가슴에 새겼을 김대건 성인은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앞장선 사제이다. 복음 선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행하는 그의 용덕(勇德)은 성인의 진면모이다. 성인은 한양에 도착한 후 보름간 병석에 누워 꼼짝할 수 없었지만, 주님을 찬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성인은 하느님 안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1846년 6월 8일 감옥에서 베르뇌ㆍ메스트르ㆍ리브와ㆍ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18.25)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김대건 성인은 죽음 앞에서 하느님의 힘을 증거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요한 10,17-18)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다. 김대건 성인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묶였고, 그리스도의 힘을 믿었기에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주님을 섬기고 구원받는 일에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 성녀의 발자취를 본받아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로운 자녀가 됨을 증거하라.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하느님의 자비하신 때를 기다려라. …모든 신자는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1846년 8월 말 옥중에서 조선 교우들에게 보낸 마지막 회유문에서)

 

김대건 성인은 삶의 끝자락에서 편지로 교우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성인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가 당신과 함께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천상 복락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다시금 일깨워주고 날마다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성덕을 쌓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요즈음 말로 ‘양 냄새 나는 목자’의 모습이다.

 

김대건 성인의 마지막 회유문은 바오로 사도의 사목 권고를 떠올리게 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콜로 3,1-4 참조)

 

우리는 알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열게 될 때 우리 안에 하느님의 사랑은 깊어진다는 것을. 김대건 성인은 마지막 회유문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임을 일깨우고 또 일깨워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