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세월호 기억공간의 ‘기억’ (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가톨릭평화신문 2021.08.15 발행 [1625호]
2014년 7월 14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피해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당시 피해가족단체에 법률지원을 하고 있던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한 서울시 공무원이 나타나 국가가 나서고 있고 이런 농성이 도움이 안 된다며 농성장 철거를 요구했다. 광장 사용 허가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고 사과가 이루어지긴 했다. 서울시, 경찰과의 수차례 만남과 전화통화가 있었고 그렇게 세월호 기억공간은 시작됐다.
그 단식 농성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광화문 미사 때까지 이어질 줄을 몰랐다. 피해가족들의 처절한 단식농성이 계속되면서 광화문 미사 때 어떻게 할 것인가가 논란이 됐다. 천주교 측과의 협의에 참여했다. 교회 내에서도 농성장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었던 것 같다. 미사를 위해 농성장을 철거하거나 이동해야 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바로 협의 중이던 사제에게 항의했고 답이 돌아왔다. “변호사님은 들리는 것만 듣고 보이는 것만 보십니까?” 믿음을 갖기로 했다. 농성장은 그대로였고 8월 14일 광화문 미사 중 교황이 세월호 피해가족들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엄마부대봉사단’의 7월 18일 세월호 피해가족들에 대한 반대하는 집회, 일베의 8월 말~ 9월 초 ‘세월호 폭식투쟁’ 등 농성 초기부터 피해가족들의 주장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노골적인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있었다. 반면 그 공간은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피해가족 등 여러 고통받는 이들의 비빌 언덕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국정농단 촛불집회 때는 그 중심에 서서 소중한 불씨를 살려냈다. 세월호 참사 그 자체의 무게도 무게이거니와 이미 세월호 기억공간은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의 공간이 되었다.
서울시의 광화문 광장 공사로 기억공간에 대한 변화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협의를 약속했지만 서울시는 일방적인 철거 통보로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국정농단 촛불집회의 역사를 지우려 했다. 세월호 피해가족들과 그 공간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상처를 줬다. 피해가족들은 다시 ‘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공간의 임시 이전이 있었고 서울시의 이후 행태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엔의 집회와 결사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2016년 한국을 방문한 후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에 대해 “엄청난 피해에 대한 반응으로써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법의 지배의 주요 요소인 책임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정부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기억공간은 단순한 추모공간을 넘어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사와 관련한 유엔 특별보고관이 2020년 보고서에서 지적하듯이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기억의 과정과 공간은 인권이 존중받는 민주적 문화를 가꾸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권을 보장할 국가의 법적 의무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기억의 과정과 공간이 피해가족들의 고통과 피해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해 피해가족들이 추가적인 가해를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기억’ 없이는 진실에 대한 권리, 정의 구현, 피해자 구제, 재발방지의 보장도 없다. 정부와 서울시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지적이다.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고 그 미완의 역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할 자격과 의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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