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법 (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가톨릭평화신문 2021.11.14 발행 [1637호]
지난 10월 22일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주최한 단계적 일상회복 관련 2차 공개토론회가 있었다. 거의 모든 발표자와 토론자가 방역, 의료 전문가로 채워져 있던 상황에서 중수본 방역인권보호팀과의 만남을 거치면서 인권단체들의 입장을 전하는 토론자로 나중에 추가됐다. 짧은 토론 시간이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사망자들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제대로 된 애도와 추모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들이 온몸으로 막았기에 우리에게 오늘이 있고 떠나간 그들이 지켜보기에 우리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기에 이곳에서 우리는 위기의 극복을 얘기할 수 있다. 공적인 공간과 시간을 통한 제대로 된 추모와 애도로부터 코로나19 위기의 극복은 출발해야 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인권 중심의 코로나19 위기의 극복이다. 감염병에 긴급하게 대응하기 어려웠던 공공의료 시스템, 재난 상황에서 더욱 심각해진 사회·경제적 불평등, 감염에 취약한 노동현장, 사회적 약자·소수자·취약계층에게 부재한 사회적 안전망, 거리두기를 중심으로 한 방역체계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장애인, 노인, 성 소수자, 이주노동자, 홈리스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취약계층이 놓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특별한 조치들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무너지고 유예된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과도한 정보수집, 법적 근거 없는 전자팔찌의 도입, 보수적인 법원도 위법하다고 판단한 과도한 집회 시위의 금지 등 기본권 침해가 아무런 사회적 논의 없이 이루어졌다.
백신 접종에 관한 정책이 차별과 불평등을 향해서는 안 된다. 쉴 수 없는 조건에 놓여있거나, 생계가 위협당하는 이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신분과 제도적인 문제로 인해 백신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안전성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 대한 배제와 낙인, 혐오와 차별은 결코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방향일 수 없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은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현재 빈곤국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까지 또 다른 2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협정의 지식재산권의 한시적 면제 등을 통해 국제적인 백신 불평등 극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의 안전이 다른 사람 생명의 대가여서는 안 된다.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코로나19 위기의 극복은 인간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의 극복은 인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의 극복, 우리의 인간 존엄의 회복에서 사회적 약자·소수자·취약계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권 없는 일상회복은 허구이고, 참사를 넘어서는 재앙일 수 있다.
며칠 전 꿈에 방역 당국 고위 간부가 나타나서 위와 같은 내용을 얘기하고 있는 나에게 내 주장만 일방적으로 펼치고 있을 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고 큰소리쳤다. 이런저런 만남에서 경청의 표정을 짓고 있던 정부 관계자분들의 속마음이 실제로는 이랬을지 모른다. 큰 방향과 더불어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씩 챙기다 보면 그 간극이 어느 정도는 좁혀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화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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