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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김승월 평화칼럼] 메리 크리스마스 대한민국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

[김승월 평화칼럼] 메리 크리스마스 대한민국

김승월 프란치스코(시그니스서울/코리아 회장)

가톨릭평화신문 2021.12.25 발행 [1643호]

 

 

 

 

엄청난 부자 사업가지만 끔찍한 구두쇠다. 평생 돈만을 위해 사느라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지내는 피붙이라고는 일찍 죽은 누이동생의 아들 프레드뿐. 어려서는 책을 좋아하는 순한 소년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다 보니 성격마저 바뀌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7년 전에 죽은 동업자 말리의 유령이 찾아왔다. 온몸에 금고, 지갑, 회계장부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쇠사슬에 휘감겨 힘겨워했다. 까닭을 묻자, 유령은 그를 과거, 현재, 미래로 안내한다. 과거의 영을 따라간 곳에서 외롭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현재의 영이 데려간 데서는 구두쇠라고 손가락질받는 자신의 처지를, 미래의 영과 함께 간 데서는 혼자서 쓸쓸히 죽은 자신의 주검을 본다.

 

꿈에서 깨어난 스크루지는 새사람이 된다. 크리스마스를 거들떠보지 않던 그다. 야박하게 대했던 직원 봅에게 칠면조를 몰래 선물하고, 문전 박대했던 자선단체에 놀랄 만한 액수의 성금을 약속한다. 조카 프레드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도 즐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던 찰스 디킨스의 명작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지난 8월 15일, 필자는 평화칼럼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을 썼다. 세계 최빈국에서 73년 만에 선진국으로 올라선 감동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합니다. 대한민국”이라고 써야 할 아픈 통계에 접했다. 세계에서 돈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지난 11월,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Pew) 리서치센터에서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17개국의 성인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material well-being)을 1순위로 꼽았다. 물질적 행복 19%, 건강 17%, 가족 16% 순이다. 반면에, 전 세계 전체 응답자의 38%가, 17개국 중 14개국에서, 가족을 첫째라고 답했다. 이어 직업 25%, 물질적 행복 19%다. 한국에서는 단수 응답하고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는 복수 응답하여 한국 응답률이 낮다.

 

가족보다 물질적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그럴까. 가족의 변화가 무섭게 이뤄지고 있다. 결혼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비혼 비율도 늘어간다. 지난해, 가임 여성 1인당 출산율은 0.84명.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0.4%, 홀몸노인은 전체 노인의 20%다. 고독사도 늘어나고 있다. 탈북자의 고독사가 코로나 기간에 5배로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러다 돈을 움켜쥐고 혼자 외롭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가 될까 두렵다.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기에, 가족의 해체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지나친 물질적 풍요의 추구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차별 의식을 심어준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모욕을 주고 폭행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입주민, 담배 사오라며 나물 파는 할머니를 꽃으로 때린 고등학생, 전단지를 넣은 할머니를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한 미용실 사장 사건처럼 나이 들었거나 힘없는 분들이 아픔을 겪게 된다.

 

양달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 무엇을 얻으면 잃는 게 있다. 놀라운 경제적 성취를 이뤄내느라, 정신적 가치가 훼손된듯하다. 물질의 풍요가 아무리 많은 것을 해주더라도 가족보다 소중할까. “행복은 돈으로는 살 수 없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도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고 꿈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 희망의 크리스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