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길정우의 인연의 향기] 감사는 능력, 기도는 은총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8.

[길정우의 인연의 향기] 감사는 능력, 기도는 은총

길정우 베드로(전 국회의원)

가톨릭평화신문 2022.01.01 발행 [1644호]

 

 

 

 

어느 교회를 지나치는데 “감사는 능력”이라는 글귀가 적힌 큰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금세 이해할 듯싶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여러 가지 뜻을 지닌 듯싶기도 했다. 감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란 말인가. 감사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능력하다는 뜻인가.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정답을 찾지 못한 채, 아니 답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저 교회에 적힌 글귀이니 하느님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이 글귀의 후렴은 아마도 “기도는 은총”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결국 기도는 자기반성과 감사에서 시작하고 은총을 간구하는 것으로 마친다.

 

나 역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에 감사하며 한 해를 시작한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새해는 달력의 첫 장과 함께 시작하고 대부분의 공식 일정도 이에 따르지만 마음속에서는 설날까지 아직 새해가 오지 않은 듯한 느낌으로 여유를 즐긴다. 마치 보너스 시간을 받은 느낌이랄까.

 

이 보너스로 주어진 시간에 매년 내가 하는 엉뚱한 의식(ritual)이 있다. ‘유서 업데이트’ 작업이다. 단순한 작성이 아니라 업데이트다. 이런 엉뚱한 짓을 시작한 지 수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지난해의 유서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롭게 작성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매 해의 유서를 차곡차곡 이어 쓰게 되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시간의 흐름에 기대어 일 년 전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흥미로운 체험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본에서 생활할 때 한 유력 언론사가 ‘내가 미리 남기는 묘지명(墓誌銘)’이란 제목의 책을 기획했다. 사회 각 부문의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기가 죽고 나서 어떤 사람으로 주변에 기억되고 싶은지, 또 스스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유서는 말뜻 그대로 남기고 싶은 말을 적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후회와 함께 남은 이들을 향한 바람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취지의 유서를 이따금씩(?) 써보는 일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묘지명보다 좀더 생생하고 소상하며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다짐을 정리해 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어쩔 수 없이 나와 인연이 닿은 이들이나 일들에 얽힌 기억과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 다만 기도에서 늘 미진한 부분이 남는 것과 달리 지난해 못다 했던 과제나 바람을 신년에는 이어서 완수해 보겠다는 다짐을 담을 수 있기에 그 완성도에 있어 다소 여유가 있다. 그러다 보니 남은 이들에게 남기는 유서라기보다 나에게 던지는 신년 메시지의 성격이 짙다. 아무튼 막연한 기도보다는 구체적이다.

 

이와 같은 엉뚱한 짓도 나이 들어서 시작한 것인데 남은 삶을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데 있어 무시 못 할 것은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로부터 배우는 일이다. 닮고 따라 하고 싶은 습관이나 행동, 닮고 싶지 않은 언행들 모두가 교훈이고 지혜다. 나의 부모와 형제라면 더더욱 닮을 가능성이 높기에 어르신들의 언행을 세심하게 지켜보며 나 자신의 미래 모습을 연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말 되풀이, 노골적인 자기 자랑, 남의 자식 험담하기, 나라 걱정, 삶이 넉넉한 이들 부러워하기, 정치인들 욕하기 등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 주변의 일상이다. 나 자신은 예외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 덕에 예방백신에 익숙해졌듯이 우리도 나이 들어가면서 챙겨야 할 백신이 있다. 닮지 말아야 할 언행을 피하며 따르고 싶은 어른들의 모습을 내 습관처럼 익혀보겠다는 결심은 그 과정이 기도이든 유서쓰기든 새해의 시작과 함께 해봄 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