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15) 시인 정호승(프란치스코) 시 쓰는 고통, 주님 사랑 있어 외롭지 않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04.03 발행 [1656호]
▲ 정호승 시인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
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 (중략) 어머니를 잃은 어머니가 찾아오는 곳 /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무릎 꿇는 곳 / 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 울려 퍼지는 곳”
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의 시(詩) ‘명동성당’이다. 이처럼 명동성당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글이 있을까 싶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 “사람이니까 외롭다”라는 그의 시구에서 국어를 맛깔나게 노래하는 시인의 정서와 표현이 놀랍고 부럽다. 정 시인은 명강의로 유명해 나는 여러 번 강의에 초대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겸손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삶의 애환과 희망에 대해 수강자들과 진심으로 나누려는 마음이 느껴져 감동하곤 했다.
▶선생님은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저는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좀 열심히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동안 시도 쓰지 않고 게으르게 지냈습니다.(웃음) 제가 올해로 한국 문단에 등단한 지 50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신작 시집과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시를 쓰며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고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시를 쓰실 때 언제, 어떻게 집필하시나요?
시를 쓴다는 것은 육체적 노동이 아니고 정신적인, 그것도 노동이라면 정신적 작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음과 머리가 맑을 때가 좋아요. 저는 오전 시간이 좋고 가능한 한 배가 부르지 않은 물만 먹으면 배고픔이 없어지는 상태에서 시를 쓰기를 좋아합니다.(웃음) 그리고 저는 수없이 고쳐 씁니다. 시를 쓰는 일도 노력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가 단번에, 또 한순간에 시를 완성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웃음) 그런데 수없이 고쳐 쓰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고 그런 ‘고침의 과정’을 거칩니다.
▶창작이라는 게 실은 굉장히 힘들고 고독하고 혼자 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기쁘실 때도 있죠?
시를 쓰는 일은 사실은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많죠. 시는 항상 새로워야 하므로 새로움을 찾고 새로움을 표현한다는 것.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죠. 왜냐하면 새로움을 발견하기는 어렵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서 새로움을 제가 얻지 못할 때는 참으로 고통스럽죠. 시가 지니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가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결정적인 어떤 그런 신비의 순간을 제가 획득하지 못할 때 그럴 때 참으로 고통스럽죠. 그래도 시를 읽고 많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큰 기쁨과 큰 위안과 이러한 것을 얻었다”라고 직접 얘기해 주실 때 시를 쓰는 어떤 기쁨보다 크죠.
▶시를 쓰시게 된 어떤 동기가 있으셨나요.
예,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 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를 가르치시면서 숙제를 내셔서 처음 시를 써 갔는데, 선생님께서 읽어보라 하시곤 “너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겠다”고 하신 그 말씀이 저한테 큰 어떤 계기가 되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노력하라는 그런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머니가 부뚜막에서 가계부 등에 연필로 김소월 시 등을 많이 써놓은 것을 보고 어머니가 지니고 계신 서정적 마음과 시의 마음을 발견하고 이해하던 과정이 제가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시인이에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시가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를 발견하고 쓰면 되는 것인데 사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안 쓰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가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시를 대신 꺼내어서 내가 대신 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지난해 명동에서 강의 후 봉사자들과 함께한 정호승 시인.
▶어떻게 세례를 받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청년 때 샤를르 달레 신부님이 쓴 「조선 천주교회사」를 읽고 큰 감동을 하였어요. 천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생명을 버리는 박해의 시기를 전 모르고 있었는데, 그 책을 통해서 감동을 지니고 있었어요. 어떻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던 저에게 동화작가인 친형님 같은 故 정채봉씨가 저를 인도해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오셨던 1984년 성탄절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앙과 시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신앙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시는 인간과 사물, 그 사물의 현상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랑의 본질인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이해 없이는 시를 쓰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시는 인간에게서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을 찾고 구현하는 문학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신자는 못됩니다.(웃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으신지요?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에페 4,26)”,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묵시 2,4)”에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다니는 저 자신을 볼 때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 생각됩니다.
▶인생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두 가지로 말씀드린다면 첫째는 방향이 속도보다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인내라고 생각해요.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결국 참고 견디는 겁니다. 견딤의 힘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윤동주의 ‘서시’입니다. 이 시에는 왜 시인이 시를 써야 하는지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 시 중에는 1982년에 쓴 ‘서울의 예수’입니다. 청년 예수가 이 시대에 서울에 왔다면 어떠한 삶을 살며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가 하는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앞으로의 꿈을 묻는 말에 정 시인은 “계속 시를 써야 시인이고 그리고 그 시가 다른 사람의 삶에 큰 위로와 위안이 된다면 그것보다 더 큰 봉사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으로 노력하는 것이 세상을 위한 봉사고 헌신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은 분명히 희망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헤어져 명동성당 계단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시인의 뒷모습을 보며 저렇게 50년간을 인고의 세월을 말없이 걸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참 아름다웠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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