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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 성가에 대한 논의 1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4.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 성가에 대한 논의 1

미사 중에 성가 부르지 않으니 빨리 끝나서 좋았나요?

가톨릭평화신문 2022.05.01 발행 [1660호]

 

 

 

▲ 「전례 헌장」은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이루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제창, 곧 공동체로서 다 함께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 성가대원들이 합창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당연시 여겼던 우리 일상의 많은 것을 앗아갔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동체 미사 참여의 어려움은 곧 주님을 노래하는 전례음악 활동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2년 넘게 성가를 속 시원히 부르지 못한 것은 그 자체로 주님을 온전히 찬양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동시에 각 본당의 성가대 활동도 위축됐다. 교회에서 성가를 노래하고, 전례 음악에 임하는 것은 우리 마음을 성화시켜주고, 더욱 깊은 진리를 찾는 기도로 이끌어준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2년 동안 무미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사실상 ‘성가 없는 미사’를 봉헌해왔다. 아름다운 성음악을 함께 감상할 공연도 볼 수 없었다.

 

이에 팬데믹이 할퀴고 간 이후 다시금 가톨릭교회 음악의 가치와 의미를 되짚고, 공동체 전례의식 고취를 위하는 성가 본연의 가치를 일깨우고자 교회음악 발전을 위해 헌신해오고 있는 이상철(가톨릭 성음악아카데미 원장) 신부의 제언을 4회에 걸쳐 싣는다. 다시 주님을 제대로, 마음껏 찬양할 때다.

 

우리는 과연 예전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 냉담자’를 양산해 낸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우리 교회는 미사 전례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급변의 시대를 겪고 있다. 성가를 부르지 못함으로써 전례의 풍요로움을 빼앗겨 삭막한 미사를 견뎌야 했다. 나아가 성가를 부르면 바이러스 전파에 일조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퍼지면서 성가에 대한 은근한 심리적 거부감이 생겨나기도 했다. 패배감과 냉소적 태도, 위기감과 허무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질문하게 된다. 미사를 길어지게 만들고 은근히 돈도 드는데 성가를 꼭 불러야 되나?

 

교회 문헌에서 ‘성음악’이란 근본적으로 미사의 모든 경문을 노래로 봉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미사 중에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를 노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사를 이렇게 봉헌하는 성당은 하나도 없다. 신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며 사제들의 역량도 안 되기 때문이다. 파스카 성야 미사에서 불리는 ‘부활 찬송’이 신자들 사이에 희화화된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성음악’이라는 고상한 말 대신 쉽게 ‘성가’라는 말을 쓰겠다.

 

「전례 헌장」 112항에서 성가는 본질적으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112항)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성가는 전례, 특히 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는 말이며, 따라서 “성가를 어떻게 해야 하지?”는 “미사를 그냥 이대로 두어도 될까?”와 관계된다. 또 같은 항에서 성가의 목적은 “신자들의 성화”(112항)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저 미사를 말로만 하면 삭막하니까 혹은 노래를 좋아하는 성가대원의 욕구를 해소시켜 주기 위해 또는 음악 애호가인 사목자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성가나 특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럴 거면 미사 때 백뮤직을 틀든지 노래방이나 콘서트에 가면 된다. 또 14항에서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이루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모든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열심히 성가를 불러야 한다는 점도 포함되는 말이다.

 

이는 제창(諸唱, communal singing), 곧 공동체로서 다 함께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미사는 주례사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례 헌장」28항은 “전례거행에서는 누구나 교역자든신자든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한다고 하면서 미사의 주체는 사제를 포함한 하느님 백성 공동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공동체성과 관련해 전례음악 전문가 하먼(K. Harmon)은 “제창은 전례에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단일한 포용적 그룹에 스며들게 만들어 준다”고 하면서 “전례에서 우리가 노래함으로써 …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데 더욱 근본적인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미사 중 성가 제창을 소홀히 여긴다는 것은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소홀히 여겨서 교우들을 공동체로 묶기는커녕 개별화, 파편화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미사 중에 성가 안 부르니 빨리 끝나서 좋네”라거나 “성가를 부르지 않아도 미사가 되네”라고 말하는 것은 전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증거다. 오히려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성가에 있어서 미사를 지루하게 만들거나 혹은 노래하라고 사제와 교우들을 귀찮게 만드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기회로, 또 교우들의 목소리를 노래로 묶어 내며 그 마음이 일치된 참된 공동체의 미사가 봉헌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미사 중에는 「가톨릭 성가집」의 노래 형태인 코랄과 같은 대중 찬미가와 CCM(생활성가)이 주로 불리는데, 그 가사들은 내용상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곧 ‘교의적 객관주의(Dogmatic Objectivism)’와 ‘심미적 주관주의(Aesthetical Subjectivism)’이다. 전자는 교리교육적이고 후자는 신앙고백적이며, 전자는 공동체적이고 후자는 개인적이다. 전자는 이성적이고 교계적이며 후자는 감성적이고 카리스마에 가깝다. 또한 전자는 지루할 수 있고 후자는 위험할 수 있다. 교회에는 둘 다 필요하지만 역사는 전자에서 후자 쪽으로 발전해 왔고, 소위 생활성가 대부분의 가사는 후자에 속한다.

 

그럼 이 시대 교우들의 성화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성가는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운용해야 할까? 어린이 성가는 21세기의 아이들에게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을까? 어른 미사에서는 가톨릭 성가, 청소년 미사에서는 CCM(생활성가)을 부르면 충분할까? 그저 교우들의 선호도를 조사해서 뽑힌 것들을 부르게 하면 어떨까? 신학교에서는 그저 노래 연습만 조금 하면 되는 하찮은 것으로 성가를 취급하고 있는데 이렇게 교육받은 사제 개인의 판단에 맡겨 놓으면 충분할까? 교구에서는 그 책임이 방기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신앙생활의 중심인 미사에서 교우들의 성화에 있어 핵심 수단의 하나인 성가와 관계된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사목적 사안에 대해 우리 교회는 이 간단치 않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상철 신부

(가톨릭 성음악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