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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명 시인 / 람람싸드야헤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20.

조명 시인 /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여행자의 오후

네 명의 형제들 들것 꽃상여 메고 골목을 달려간다

수백 송이 서광꽃 아래 시신으로 누워 가벼워지는 내 몸

아득히 나를 통과하는 시장통 하늘의 뭉게구름들

아이들 소리 장사꾼들 소리 병든 소 울음소리

나는 지금 어디를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 겁니까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강변 콘크리트 계단에서 시신들 지글지글 타는 노을녘

운구 행렬은 황토색 강물 앞에 나를 내려놓는다

하늘로 향한 앙상한 맨발을 가로지르는 유장한 강물

타다 남은 해골 그루터기들 품에 안은 갠지스 어머니

 

어머니,

나는 고래 같은 내 아들들 더 키워야 합니다

어머니,

나는 코끼리 같은 내 딸들 더 키워야 합니다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확연한 물방울 유두를 깊숙이 물어라

한 모금의 신으로 죽음을 지나가는 여행자의 안쪽 다 씻어라

홍고추 청솔잎의 금줄을 끊는 새벽을 가라

 

람람싸드야헤! 람람 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신들 잡귀를 어슬렁거리는 저물녘 옥상 화장터

나는 장작더미 위에 누워 장작더미를 덮는다

코끼리 날개 좇아 빨빨대던 영욕의 알몸

입 닫은 한 생애 위로 신화 이전의 밤이 밀려온다

장작개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모자이크된 별들의 은하

나는 지금 어디로 어떻게 건너가고 있는 겁니까

 

람람 싸드야해! 람람싸드야해! 람람싸드야헤!

축축한 시신은 푸시시 보송한 시신은 활활

살이 타고 연골이 타며 벌떡, 일어났다 털썩, 주저앉는 해골들,

누런 늑골 열리자 푸른 밤하늘로 어둠이 콸콸 흘러 나가고

내 철없는 두개골은 난간 넘어 지붕들 건너뛰어

데굴데굴데굴데굴 가파른 계단을 굴러 풍덩, 갠지스 어머니!

 

감람나무 그늘 아래 보리수 그늘 아래

두고 온 새끼들 핥고 빨며 나는 더 살고 싶어요!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확연한 물방울 유두를 깊숙이 물어라

한 모금의 신으로 죽음을 지나가는 여행자의 안쪽 다 씻어라

홍고추 청솔잎의 금줄을 끊는 새벽을 가라

 

람람 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람람 싸드야헤!

꽃불의 몸 불꽃의 마음

가차없이 재로 수습되는 푸르스름 꼭두새벽

촛불 밝힌 풀잎 꽃배들 붉은 강물을 건너간다

 

반 남은 생수병에 신을 채우고 돌아서는 여행자 등 뒤로

어둠은 또 사라지고 여명은 또 밝아 오고

늙은 걸인들 시장통 공터를 쓸고 단정히 도열해 앉으시고

세수하고 머리 빗은 아이들 등짝보다 큰 책가방을 메고

커다란 학교 속 조그만 학교로 공부하러 가신다

 

람람 싸드야헤! 람람 싸드 야헤! 람람 싸드야헤!

 

-시집, <내 몸을 입으시겠어요?>, 민음사, 2020

 

 


 

조명 시인

1955년 충남 유성 출생.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학과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 석사 졸업. 2003년 계간 《시평》에 〈여왕코끼리의 힘〉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여왕코끼리의 힘』(민음사, 2008) 『내 몸을 입으시겠어요?』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