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4)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숲에서 나온다 숲을 체험한 아이가 똑똑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06.05 발행 [1665호]
생각이 엉켜 해법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 쓰던 글이 제 자리를 맴돌 때, 나는 종종 이런 잡다함을 책상에 남겨놓고 나와서 숲길을 걷는다. 대부분 작가나 철학자들이 나와 비슷한가 보다. 일본의 미요시 주로란 작가도 “만일 나라는 작가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작품이 있다면 모두 산책 덕분이다”라고 걷기를 예찬했다니 말이다. 하기야 이 세상 누군들 숲을 걷고 나서 행복함을 느끼지 않을까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소소한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다.
숲을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간편하게 행복을 얻는 방법이다. 보통의 운동과는 다르게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 없다. 잠시 짬을 내어 그저 나가면 된다. 시간도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하루, 한나절, 심지어는 점심 후 잠깐이라도 근처 공원이나 숲길을 거닐고 나면 기분이 바뀌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인 세로토닌 문화원 이시형 박사는 행복의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가장 활발히 분비되는 장소가 숲이라고 강조한다. 율동적인 움직임, 햇볕, 그리고 오감을 자극하는 온갖 요소들이 숲에는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숲에 들어서면 지금까지 나를 옭매왔던 고민이나 복잡한 생각, 걱정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오직 눈앞에 펼쳐진 숲의 아름다움,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숲의 인자들이 내 몸과 마음을 일깨울 뿐이다. 얼마 전 참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의 한 회사가 중역 회의를 숲에서 했더니 회의실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한동안 숲길을 걷고 나면 마치 컴퓨터의 포맷 기능을 수행한 듯 머릿속이 정리된 느낌이 들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몇 년 전 우리 연구실에서 실제 숲을 걸음으로써 얼마나 인지력이 향상되고 기억력이 높아지는지를 실험을 통해 밝힌 적이 있다. 대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30분간 도심과 숲을 걷게 한 후 기억력과 인지력의 변화를 측정해 보았더니 도심을 걷고 난 후 학생들의 인지력과 기억력을 오히려 떨어진 반면 숲을 걷고 난 대학생들은 약 26% 정도의 향상을 보였다.
경험자로서 또 연구자로서 나는 어머니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길 원하면 자주 숲에 데려가라고 권고한다. 앞서 언급한 이시형 박사도 뇌의 학습 능력을 높이기 위해선 뇌 속에서 세로토닌을 충분히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상에만 앉아서 공부하기보다는 때때로 숲으로 가서 잠시라도 머리를 식힌 후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놀 권리, 자연과 접할 권리를 빼앗겼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여러 학원을 돌고 난 후 늦은 밤 축 처진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하루 맨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나무 한 그루 만져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더불어 사는 삶을 알고 이웃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또 이 아이들이 커서 어떤 추억과 그리움으로 어린 시절을 돌아볼 수 있을까?
숲은 변화무쌍하고 정형화된 틀에 짜여있지 않기 때문에 탐구력을 길러주고 창의력을 발휘하게 한다. 교실에서 정답만을 선택하게 하는 교육과는 아주 다른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이번 주말부터라도 아이들과 손잡고 가까운 숲에 가서 자연이 주는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하면 좋겠다. 미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자연과 조화로운 휴양과 여가를 즐기는 성인 대부분이 어릴 때 부모와 숲을 접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숲 경험에도 맞는 모양이다.
|
'<가톨릭 관련> > ◆ 가톨릭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Buon pranzo!] 3. 요리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의 만남(중) (0) | 2022.06.13 |
---|---|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제41화) (0) | 2022.06.12 |
[Buon pranzo)!] 2. 요리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의 만남(상) (0) | 2022.06.10 |
[영화의 향기 with CaFF] (165) 오마주 (0) | 2022.06.09 |
유흥식 추기경 서임 의미 (0) | 2022.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