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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윤희 시인 / 그대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26.

김윤희 시인 / 그대는

 

 

들풀 속

꽃잎 이슬이

한 잎 한 잎 필 때

내 언어는

꽃앞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됩니다

 

작은 날개 파닥거리며

눈물의 뒤안길 도는

사랑의 다른 몸짓임을

울면서 감격하던 언어

 

안으로만

깊숙이 묻어 내 언어는

때론

한 마리 꿀벌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 자주 부르며

몸과 맘도 어느덧

그의 언어가 되어버립니다

 

풀잎에 이슬 같은 음성이

내 안으로 다가오는 언어가

내 사랑이었네

내 사랑이었어요

 

 


 

 

김윤희 시인 / 상처도 사랑의 일부라는 것을

 

 

정다운 시절은 등 뒤로 지나간다

햇살 눈부신 미소

장미빛 붉은 드레스 입고 스텝 밟으며

춤추고 있는데

 

짙은 어둠 속에서 빛만큼 선명한 게 있을까

수많은 별 수천의 꽃송이에도

너를 찾아 헤마다 보면

나는 어느새 울고 있다

 

너와 나 사이는 장미와 들풀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바다는 모든 것을 다 흡수하여 파도가 되고

해변의 발자국을 지우고 기억도 하지 않는데

나 홀로

거울을 볼 때 마다

몸 밖으로 꺼내진 이 신열이

내 몸의 가시라는 것을 되새기고 있다

 

 


 

김윤희(金閏喜) 시인

1939년 경남 진주 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6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겨울방직》 《소금》 《오직 눈부심》 《설국》 《성자멸치》 등이 있음. 계간 <시와시학> 제14회 시와시학상 작품상 수상. 현재 한국 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한국시인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