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란 시인 / 눈물의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작고 작은 방 그 방에서 사는 일은 조금 춥고 조금 쓸쓸하고 그리고 많이 아파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다보면 방바닥에 벽에 천장에 숨겨져 있는 나지막한 속삭임 소리가 들려 아프니? 많이 아프니? 나도 아파하지만 상처가 얼굴인 걸 모르겠니?
우리가 서로서로 비추어 보는 얼굴 네가 나의 천사가 내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 조금 더 오래 살다 보면 그 방방이 무수히 겹쳐져 있다는 걸 알게 돼 늘 너의 아픔을 향해 지성으로 흔들리며 생겨나고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방 눈물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크고 큰 방
김정란 시인 /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네 망설임이 먼 강물소리처럼 건네왔다 네 참음도 네가 겸손하게 삶의 번잡함 쪽으로 돌아서서 모르는 체하는 그리움도
가을바람 불고 석양녘 천사들이 네 이마에 가만히 올려놓고 가는 투명한 오렌지빛 그림자도
그 그림자를 슬프게 고개 숙이고 뒤돌아서서 만져보는 네 쓸쓸한 뒷모습도
밤새 네 방 창가에 내 방 창가에 내리는, 내리는, 차갑고 투명한 비도
내가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한번, 내 이름으로,
너는 늘 그렇게 내게 있다 세계의 끝에서 서성이는 아득히 미처 다 마치지 못한 말로
네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쓴다, 내 가슴 빈터에
세계가 기웃, 들여다보고 제 갈 길로 가는 작은, 후미진 구석
그곳에서 기다림을 완성하려고 지금, 여기에서, 네 망설임을, 침묵을, 거기에 심는다, 한번 더, 네 이름으로,
언제든 온전히 말을 거두리라
너의 이름으로, 네가 된 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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