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5) 나무들의 생존법 서로 다른 시기 꽃피우는 나무의 지혜 가톨릭평화신문 2022.06.12 발행 [1666호]
숲에는 제각기 다른 개성과 성질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산다. 산수유나 생강나무 같은 나무는 쌀쌀한 기운이 가시기도 전인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부지런함을 떠는 반면 6~7월이나 돼서야 꽃을 피우는 개다래 같은 나무도 있다. 그래서 숲은 언제나 꽃 천지를 이룬다. 왜 나무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각각 알아서 꽃을 피울까? 물론 우리 인간에게 끊임없는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서로 다른 시기에 피는 것은 아니다. 다 나무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생존 전략에 맞추어 적당한 시기에 제 꽃을 피우는 게 생태계의 이치이다. 한꺼번에 모든 나무가 꽃을 피우게 된다면 꽃이 수정하는 데 너무 큰 경쟁이 벌어지고 이는 곧 모두가 생존에 불리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어제 숲 속에서 발견한 나무가 개다래였다. 멀리서 흰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것처럼 보여 다가가 보니 누가 일부러 페인트를 칠한 것같이 잎이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개다래나무는 수분이 많은 토양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보니 도심의 숲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키가 작으니 햇빛을 충분히 받으려고 옆 나무를 기대어 올라가기도 한다. 여름이나 돼서야 피는 개다래나무의 꽃은 크기도 작을뿐더러 나뭇잎 아래에 있어 겉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벌과 나비들을 유인해 수정해야 하는 데 불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택한 전략이 가짜 꽃으로 이들을 유인하는 방법이다. 개다래나무의 꽃이 필 무렵에는 꽃이 피는 잎의 위쪽이 흰색으로 변해 마치 멀리서 보면 꽃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다. 이 가짜 꽃에 유인된 곤충들은 속아서 찾아왔지만, 다행히 잎 아래에 있는 꽃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고 진짜 꽃을 찾게 된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꽃이 수정되고 나면 그 잎은 서서히 녹색으로 변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숲에는 이런 생존의 지혜가 가득한 창조적인 아이디어 수없이 많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풍나무의 씨앗이 아주 좋은 예이다. 요즘 단풍나무는 아주 예쁜 선홍색의 씨앗들을 많이 달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 마치 씨앗에 큰 날개를 단 것 같은 모습이다. 씨앗이 떨어져 멀리멀리 날아가 후손을 퍼트리기 위한 전략이다. 그래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자연에서 그 원리와 현상들을 관찰하고 모방하여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무들은 나무들대로의 개성과 전략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키와 부피를 키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마치 그런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해 그런 것인 양 착각을 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이 자연을 관리하게 만드셨지만, 이는 자연을 잘 보살피라는 하느님의 말씀이란 것을 잘 명심해야 한다.
「싸우는 식물」이라는 책의 저자인 히데히로는 “인간은 식물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식물이 인간을 감쪽같이 속여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나무 역시도 이렇게 고도의 생존 전략을 가진 존재이고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인 ‘레오폴드’도 「토지윤리(Land Ethics)」란 사상을 전파하면서 이제는 윤리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서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자연과 자연까지 확대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늘 조금하고 한 방향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숲에서도 한눈팔지 않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서 “야호!”하고 내려와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숲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지혜는 그 속의 나무와 풀, 동물과 곤충들과 조화롭게 교류하고 이해하며 존중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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