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훈 시인 / 유령 노래방
모든 가사들이 주술같이 드나들며 흉기로 찌르는 아무도 없지만 아무나 있는 방 구석구석 점멸하는 눈빛을 숨길 수 없었던 거야 얼마나 많은 감정이 사라지고 돌아오며 재생되는 서로가 서로를 머금고 삼키며 뱉어내야 했던 마취의 밤은 아직도 거기에 살지 이 별에서 저 별로 어두워 질 때까지 반짝이다 어디에도 살지 않기에 어디에나 살고 있는 유일한 당신과의 안식처 색이 바래가는 소파와 유독 사랑이 많이 구겨진 노래책 지문으로 흘러내리는 눈자위가 가물거려 한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한 남자가 듣지 못하는 주문에서 생략된 소리보다 가벼워지거나 무거워지네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도 자라나 퍼져가는 화음으로 중력에서 벗어나고 있으니 오늘 만난 당신을 어제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내일 부르던 당신을 오늘 만날 수 있는 거지
계간 『다층』 2020년 겨울호 발표
권성훈 시인 / 지씨네 만두 복음
여기 밀가루 한 포대 불상을 모신 연무시장 지씨네 만두집 별미는 얇은 만두피에 담긴 한 점 한 점 말씀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원의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모두 같은 표정이지만 모든 다른 얼굴로 온종일 서서 정성스럽게 두 손 가득 빌고 있는 20킬로그램 반죽은 옆구리에서 터져 나온 생불이라 오병이어의 기적들이라고 불렀다 삭발한 보살들이 깨지지 않는 스테인레스 찜기처럼 칸마다 모락모락 금기 버린 참선에 들고 있다 빚고 빚어 얇을 대로 얄팍해진 흰 거죽으로 달고 닳아 두꺼워진 검은 가죽을 찌우고 있는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최초의 복음일지니 오늘 기도하는 빈칸을 위하여 더 많은 내일 하늘피로 채워도 좋겠다
계간 『시작』 2021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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