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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성훈 시인 / 유령 노래방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

권성훈 시인 / 유령 노래방

 

 

모든 가사들이 주술같이 드나들며 흉기로 찌르는

아무도 없지만 아무나 있는 방

구석구석 점멸하는 눈빛을 숨길 수 없었던 거야

얼마나 많은 감정이 사라지고 돌아오며 재생되는

서로가 서로를 머금고 삼키며 뱉어내야 했던

마취의 밤은 아직도 거기에 살지

이 별에서 저 별로 어두워 질 때까지 반짝이다

어디에도 살지 않기에 어디에나 살고 있는

유일한 당신과의 안식처

색이 바래가는 소파와 유독 사랑이 많이 구겨진 노래책

지문으로 흘러내리는 눈자위가 가물거려

한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한 남자가 듣지 못하는

주문에서 생략된 소리보다 가벼워지거나 무거워지네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도 자라나

퍼져가는 화음으로 중력에서 벗어나고 있으니

오늘 만난 당신을 어제 부를 수 있는 것처럼

내일 부르던 당신을 오늘 만날 수 있는 거지

 

계간 『다층』  2020년 겨울호 발표

 

 


 

 

권성훈 시인 / 지씨네 만두 복음

 

 

여기 밀가루 한 포대 불상을 모신

연무시장 지씨네 만두집

별미는 얇은 만두피에 담긴 한 점 한 점 말씀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원의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모두 같은 표정이지만 모든 다른 얼굴로

온종일 서서 정성스럽게 두 손 가득 빌고 있는

20킬로그램 반죽은 옆구리에서 터져 나온 생불이라

오병이어의 기적들이라고 불렀다

삭발한 보살들이 깨지지 않는 스테인레스 찜기처럼

칸마다 모락모락 금기 버린 참선에 들고 있다

빚고 빚어 얇을 대로 얄팍해진 흰 거죽으로

달고 닳아 두꺼워진 검은 가죽을 찌우고 있는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최초의 복음일지니

오늘 기도하는 빈칸을 위하여

더 많은 내일 하늘피로 채워도 좋겠다

 

계간 『시작』  2021년 겨울호 발표

 

 


 

권성훈 시인

2002년 《문학과 의식》 시부문, 2013년 《작가세계》 평론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유씨 목공소』 외 2권과 저서 『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 『정신분석 시인의 얼굴』과 편저 『이렇게 읽었다―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 등이 있음.  젊은 작가상, 열린시학상, 한국예술작가상 수상.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이며 경기대학교 융합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