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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상규 시인 / 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14.

한상규 시인 / 밤

 

 

 이 밤,

 

 자판을 두들기며 무언가를 지웠다가 다시 쓰고 반복하다 보면 찾을 수 있을까? 책상 위에는 해변의 카프카가 있는데 책장을 넘겨 본 적이 없어서 카프카가 사람이름인지 건물이름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지금도 계속해서 찾으며 빈 문서1에다 하소연하고 있지만 도무지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하얀 색 화면 위에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말들만 나열하지만 화면이 반쯤 채워진 지금도 정체를 알 수 없다. 말과 말이 무수히 반복되어 지루해진 지금 소리쳐 부르고 싶지만 카프카한테 미안해서 외칠 수 없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말이 인쇄돼 나오게 되면 검은 색 리본을 선물해야겠다. 선물한 리본을 발목에 묶고 밤이 오길 기다리면 카프카가 말이 되고 내가 카프카가 되고 검은 리본을 단 말 많은 짐승이 하얀 거리를 당신을 나를 카프카를 찾아 헤매이는

 

 이 밤,

 

계간 『시와 세계』 2022년  여름호 발표

 

 


 

 

한상규 시인 / 투명한 a

ㅡ시뮬라크르들의 자전

 

 

 이곳에서 나는 축구선수

 나는 공을 가로채는 수비수 상대방의 다리 사이로 절며한 스루패스를 하는 최고의 미드필더 160Km의 강슛을 날리는 스트라이커

 이곳에서 나는 재능있는 축구선수

 

 이곳에서 나는 특수부대원

 적의 심장을 정확히 맞추는 스나이퍼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용감한 돌격대원 위험한 작전을 지휘하는 지휘관

 이곳에서 나는 유능한 특수부대원

 

 이곳에서 나는 神

 나는 글자를 만들어내는 창조자 분신을 만들어내는 복제자

 질서를 수호하는 수호자

 이곳에서 나는 절대적인 神

 

 이곳에서 나는 A

 시민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걷는 사람 A 만원버스에 타고 있는 가방든 사람 A 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있는 땀흘리는 사람 A

 이곳에서 나는 투명한 A

 

계간 『시와 세계』 2021년 봄호 발표

 

 


 

한상규 시인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同 대학원 국어교윢학 졸업. 2003년 《시와세계》등단. 시집으로 『나와 파르마콘과 생각버스』가 있음. 2022년 시와세계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