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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리 & 영성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175. 죄의 다양성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5.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75. 죄의 다양성

(「가톨릭 교회 교리서」 1852~1853항)

죄의 겉모습보다는 그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2022-07-03 [제3301호, 18면]

 

 

의도는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죄의 뿌리는 자유의지에 있어

행위 의도에 이웃 사랑 담길 때

다양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어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빵을 훔친 죄로 수감돼 강제노역을 하는 장발장. 죄는 다양하기 때문에, 죄를 판단할 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그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제가 한여름에 휴가를 받아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커다란 트럭 두 대가 충돌하였습니다. 뒤차가 앞차를 박았습니다. 두 차가 차선을 다 막아버려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워서 그런지 아무도 차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도로에 떨어진 잔해를 치웠습니다. 저도 사제로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와 함께 길에 떨어진 잔해를 치웠습니다.

 

길을 치우다 깨져버린 스마트폰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주워서 사고 난 차량 앞으로 갔습니다. 뒤에서 들이받은 차는 심하게 부서져 있었고 운전자는 다리가 끼여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통스러워하는 그 운전자에게 깨진 휴대전화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다친 트럭 운전자를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벌써 5분 이상은 지난 상태였고 제가 차로 돌아와 119에 신고하니 제가 첫 신고자였습니다. 차량이 수천 대 밀려 있었지만 한 명도 다친 사람을 위해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와 함께 길을 치우던 사람이 자신의 차를 사고 난 차량 사이로 몰아서 빠져나갔습니다. 자기가 빨리 가려고 길을 치웠던 것입니다. 저도 차를 빼야 했기에 사고 난 차량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신고는 했기에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는 도중 경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현장에 함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지나쳐 가고 있었습니다. 매우 창피하였습니다. 저도 차에 끼여본 적이 있어서 그 아픔과 외로움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 때 저만큼 선행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고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 중에 저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없습니다. 겉모습만 볼 때 저는 의인입니다. 길도 치우고 휴대전화도 주워주고 신고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실 때는 가장 큰 죄인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강론을 수백 번은 한 것 같은데 그냥 그 사람을 두고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죄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의 죄를 판단할 때 겉모습만 보고 죄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장발장처럼 배고파서 빵 한 조각을 훔쳐 수년간 징역을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추앙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죗값을 치르지 않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일상에서는 사람에게 작은 피해만 줘도 죄를 묻습니다. 친구에게 욕을 하는 것이 상황에 따라 장난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부모에게 그러면 큰 죄가 됩니다.

 

따라서 죄의 겉모습보다는 그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의도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죄의 뿌리는 인간의 마음속에, 그의 자유의지에 있는 것입니다.”(1853) 선행처럼 보여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마더 데레사가 가난한 이를 돌보고 있을 때 한 사제가 지나가며 미사에 가자고 했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저는 지금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쳐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사의 목적은 결국 사랑의 실천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어기는 게 죄입니다. 마음 안에서 내가 하는 행위의 의도가 과연 ‘이웃 사랑’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선행을 가장한 위선이나 다양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

(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로마 우르바노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2004년 수원교구 사제로 서품됐다. 이후 로마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공부해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오산본당 주임과 수원교구 복음화국 부국장을 거쳐 현재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