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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8) 밤나무 이야기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7.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8) 밤나무 이야기

탐관오리들이 세금 매기던 밤나무

가톨릭평화신문 2022.07.03 발행 [1669호]

 

 

 

 

요즘 산이나 숲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밤나무꽃이다. 마치 동물의 꼬리처럼 희고 길게 생긴 꽃들이 풍성하게 달려있다. 옛날에는 밤이 먹거리로도 많이 쓰여 밤나무가 마을 주변에 많이 심겨 있었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밤나무골’이나 ‘밤나무고개’라 불리는 곳도 많았다.

 

전남 여수에는 율촌면이라는 곳이 있는데 현재는 그리 밤나무가 많지 않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옛날에 이 지역이 기후와 토질이 좋아 밤농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밤이 탐관오리들의 먹잇감이 돼 툭하면 밤세를 붙여 세금을 뜯어 갔다 한다. 원성이 높아지자 숙종 13년에 이봉징이라는 분이 부사로 부임했는데 밤나무가 없으면 밤세를 부과하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모조리 베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밤세로부터는 자유로워졌지만, 먹거리가 없어지고 백성들의 삶도 더 피폐해지지 않았을까.

 

밤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이다. 또 잘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같이 핀다. 우리가 겉으로 보는 길게 달리는 것이 수꽃이고 암꽃은 그 밑에 달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밤나무를 한자로 ‘栗’이라고 하는데 나무 위에 꽃과 열매가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형상을 표현했다니 적절한 상형문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밤꽃은 향기가 독특하여 예로부터 말이 많았다. 꽃향기 성분에 스퍼미딘과 스퍼민이 포함돼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밤꽃 냄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호불호는 크게 갈린다. 주변에 얘길 들어보면 어떤 사람은 매우 역겹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상큼하고 집중이 잘 되는 냄새라고 한다. 밤꽃 냄새는 그대로인데 이것을 느끼는 우리는 다 제각각이니 세상의 사물을 판단하는 우리의 가치가 얼마나 자신의 색깔대로 인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꽃이다.

 

추운 겨울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군밤을 파는 노점이 있게 마련이다. 아마 한 번쯤은 데이트하면서 또는 가족들과 한 봉지 사서 먹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박방희 선생의 동시 ‘군밤’에서도 군밤을 입안의 군침이 한가득 고이는 맛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탈리아를 겨울에 여행해 보면 우리와 비슷한 군밤 장수들이 로마나 밀라노 시내에 곳곳이 보인다. 호기심에 한 봉지 사 먹어 보니 이곳의 밤 맛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속껍질이 쉽게 벗겨져 먹기가 쉽다. 우리나라의 밤은 속껍질을 제거하기가 어려운데 말이다.

 

밤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생밤으로 먹으면 씹을수록 달콤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쪄서 먹기도 하고, 밥에도 넣어 먹기도 하고, 또 약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밤으로 만든 빵과 과자가 아주 인기가 있어 우리나라에서 주로 가루나 반죽 형태로 수출한다. 밤이 먹거리로 중요해서 조선 「세종실록」에도 ‘흉년이 들면 백성들이 밤을 주워 생활해야 하기에 산과 들을 불태우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기록도 있다. 또 성종 때 출간된 「속대전」이란 책에도 ‘밤나무를 심고 가꾸어 생산하는 농민은 부역을 면제해 준다’라는 기록도 있다고 하니 밤나무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밤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드문데 강원도 평창 운교리에 있는 밤나무는 2008년에 천연기념물 제498호로 지정되었다. 이 밤나무는 땅에서 약 1.5m 정도 높이에서 큰 가지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나무 높이는 16m, 가슴 높이 줄기 둘레가 6.5m 정도 된다. 나무의 나이는 약 500년 정도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밤나무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주 건강하게 잘 버티고 있어 상징성뿐만 아니라 학술 가치가 매우 크기도 하다.

 

 


 

신원섭 라파엘 교수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