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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수 시인 / 봄, 꿈 발전소 외 1건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17.

강수 시인 / 봄, 꿈 발전소

 

 

거대한 꿈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했다

얼어붙었던 얼음 덩어리들은

발전소에서 꿈으로 재생된다

저 꿈의 빛깔들로 인해

우리들의 겨울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목도리로 칼바람을 가리고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이면서도

가슴속에 꿈 발전소 하나 지을 땅은 남겨뒀었거니

귀 기울여 보라

가슴 속에서 쿵쿵 발전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리니

그 소리 들리는 한, 아직 아무 것도 끝난 것은 없는 것이다

저기, 녹색 꽃망울에서 붉게 솟구치는 꿈의 화염을 보라

 

 


 

 

강수 시인 / 태풍이 온다 -아버지 1

 

 

1

 

바다가,

밧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풀면서 아버지의 삶을 조율했다.

 

2

 

아버지들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자신의 지위와 신분에 맞는 위치에 정박했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삶이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항구 외곽에 매달려 있던 아버지들부터 하나씩 가라앉고 있었다.

항구 안쪽으로 들어올 능력이 없는 아버지들부터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들은, 서로의 몸에 의지한 채, 어금니를 앙다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삶의 외곽에서 항구의 안쪽을 꿈꾸던 아버지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우리의 슈퍼맨들이 너무 힘없이 침몰하고 있었다.

 

3

 

방송에서는 대피 요령을 계속 외쳐댔지만, 그건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배의 이물에 밧줄을 옭아매고 힘껏 당겼다.

절망적인 배의 모가지에서 꾸르륵꾸르륵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이승의 끈을 끊고 싶은 아버지가 검푸른 바닷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팽팽한 밧줄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걸렸다.

우리가 저승으로 갈 수도 있고 아버지가 이승으로 올 수도 있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 뜬 무지개가 비바람에 펄럭였다.

공부, 열심히, 해서, 항구의, 안 쪽,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어머니는 흠뻑 젖어 산발한 머리인 채로 말했다.

옷이 찢어지고 젖가슴이 다 드러났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죽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들이 겨우 겨우 지나가고 있었다.

배들이 하나둘씩 가라앉고 있었다.

바닷속으로, 아버지를 따라, 끌려, 들어가는,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차라리, 행복한 공포가 흘러나왔다.

 

4

 

아버지라는 이름은,

가느다랗고 긴 모가지를 가지고 있다.

너무나 하얘서 아름다운 빛깔....

그 모가지를 조이고 있는 밧줄의 끝에는

푸르딩딩하게 멍든 바다가 산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퉁퉁 불어 떠다니는 바다....

 

 


 

강수 시인

1968년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포토포엠 『봄, 꿈발전소』, 포토포엠 시집 『돌, 제주의 영혼을 만나다』, 서사시집 『서사시 대백제』가 있음. 2009년 포토포엠 전시회(바움갤러리) 개최. 2010년 공연극 <태권 무무 달하>, 창극 <황진이>, <도미부인> 개작에 참여. 2013년 단편 뮤지컬 무비 『빵셔틀』 영화제작(시나리오 작가 및 펀드메니지먼트로 참여). 2008년 바움작품상 수상. 현재 리브레토 오페라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