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형 시인 / 짐짓
횡단보도 앞 난전에서 콩을 파는, 불린 메주콩 같은 아주머니, 오늘도 비 둘기를 쫓느라 매를 든다. 염치 없다며 고개를 빼들고 둘레둘레 딴전을 피면서도 먹을 것이 소복하게 담겨 있는 앞을 비둘기는 좀체 뜨지 못한 다. 배고프기야 네 사정이 내 사정이라고 땅, 땅, 땅. 나무 작대기는 차마, | 비둘기 옆 땅바닥만 친다. 엄마야! 비둘기는 날개를 가누지 못하는 시늉 만 장단 맞추고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가는 고개만 돌리고 또 다가 선다.
어릴 적에 어머니, 회초리로 방바닥만 때리며 짐짓 몰아치던 그 때.
기어코 콩을 삼키는 비둘기 놀랜 목구멍 옆에서 졸다가 깬 아주머니, 혼자 먹는 길 위의 점심도 구르듯 목구멍을 타넘는다
이선형 시인 / 나무 그림자에 쉬다
자기 앞에 그림자 하나 툭 떨어지고 지난 일이나 앞일이나 생각도 없는, 터벅터벅 걷는 밤 있습니다. 녹초가 된 날이지요 마음의 무엇이 혼자 후렛쉬를 켜고 발 앞만 밝히고 가는 집중이 있습니다. 가다가 외진 길가에 겨울나무 제 그림자를 보고 서 있습니다 실가지 그림자 위에 내 그림자 겹쳐집니다 나뭇가지에 잠깐 날개를 쉬는 새 그림 같습니다 기분이 좀 좋아집니다 그러고 빈 길을 걸어가니 거기 새가 날아가는 하늘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오르려 하다가 스스로 장난이 싱겁습니다
잠깐의 시렁뱅이 꿈만큼이나 한 게 있던가, 뭐 자기의 생을 아끼며 살아가려고, 깐에 나도 한 생물체로서 의기소침하여 줄어지는 그림자에게 나는 말을 붙였습니다 물론이지요 옆구리 사이로 부추기는 것이지요 고마운 날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야 알지요 그렇지만 나무 그림자에 깃들고 싶은 날들도 있는 거겠죠 정말 숨쉬는 새,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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