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균 시인 / 가족사진
어머니 가슴 옆에 가슴 속의 가슴에 앉은 아버지는 폐를 베고 누워 호탕한 방귀만 뀌어대고 발가락 새 때만 벗기고 남은 허파엔 동생 동생이 불어라 허파 힘껏 불고 있는데 빨아도 빨아도 빨리지 않는 허파는 너무 좁아 짜부라져 헐떡거리는 엄마를 업고 자꾸만 등에 땀이 나서 미끄러지고 미끄러져서 헉헉 골목길을 달리지는 못하고 기어서 가는 이유는 다리가 아파서가 아니고 허파가 눌려서 가슴 좀 누르지 마세요 어머니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숨을 못 쉬겠잖아요 그러게 평소에 숨을 쉬라 했잖니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 자꾸 숨을 쉬라 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요 아버지 그 안에서 방귀 좀 그만 뀌세요 담장에 병들을 저렇게 깨서 꽂아놨구나 저 집은 갈색들이고 그 앞집은 녹색이네 딴소리하지 말고요 동생들은 그만 꺼내서 던져 버리고요 그건 브라운이라고요 그래 저 집은 알록달록하구나 우리 집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난 저 색깔들을 보면 토하잖니 어머닌 어머니일 때부터 토했죠 난 나면서부터 토한 걸요 숨을 깊이 쉬세요 어머니가 꺽꺽댈 때마다 약발이 받지 않는단 말이에요 골목을 끼고 골목을 건너 골목을 걸으면서 담장들 색깔이 원래 이렇게 그레이였나요 회색이잖니 아뇨 그레이예요 의도적인 그레이는 슬프지 않거든요 그나저나 가슴 좀 그만 움켜쥐라니까요
이석균 시인 / 연어
아버지 직업을 적어오래요 리어카 배추장사라고 쓸까요 아니다 좀 더 있어 보여야 하지 않겠니 행상이라고 쓰렴
다음날 아버지는 귀가하지 않았고 아들은 찾아 나섰다 평리동에서 내당동까지 골목골목 뒤질 때, 도로까지 삐져나온 익숙한 소주 냄새, 아버지는 리어카 안에 시래기처럼 붙어 있었고, 리어카를 끌고 오며 아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 노래를 잘 기억한다
다시 찾은 골목은 아버지의 골목이 아니고, 아들은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아니다 골목은 모두 사망한 지 오래 아버지 단골집들은 이삿짐처럼 포개져 있고 트럭 짐칸 널브러진 아버지 앞에 아들 대신 목소리 좋은 확성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들은 아들을 낳지 않았다, 딸은 아버지 직업에 시인이라고 쓴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 숨이 가빴지만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ㅡ한국문인협회 원주지부『생명문학 』(2019, 제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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