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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길 위의 목자 양업] (36) 신나무골성지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9.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36) 영남 지역 신앙의 요람, 신나무골성지

영남 복음화 거점으로 삼아 활발하게 전교 활동

가톨릭신문 2022-09-18 [제3311호, 12면]

 

 

1800년대 초기 박해 피해 숨어든 교우촌

경상 지역 선교 위해 신나무골에 정착한

로베르 신부 머물렀던 초가 사제관 복원

우물터·빨래터 등 옛 모습 그대로 재현

 

 

 

신나무골성지 입구에 있는 로베르 신부 흉상과 ‘대구 천주교 요람지 기념비’.

 

 

마카오와 중국, 홍콩을 거쳐 1849년 조선에 도착한 최양업. 그토록 염원했던 조선에서의 사목활동을 시작한 그는 충청도에 머무르며 조선에서 쓴 첫 번째 편지를 부친다. 도앙골에서 보낸 그의 편지에는 신자들과 만난 기쁨과 그들의 가련한 처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이후 절골과 동골, 배론, 소리웃, 불무골, 오두재 등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머물렀던 최양업은 1859년 10월 11일, 경상도 지역의 교우촌에서도 편지를 보낸다. 바로 안곡이다. 경상도 서북부 지역으로 추정되는 안곡 교우촌에서 최양업은 곡절 많은 지난 여정 속에서 경험한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시련보다는 보람됐던 순간에 집중한 그는 신자들을 위해 더욱 힘을 내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에 위치한 신나무골성지는 영남 지역 신앙의 요람으로 꼽히는 곳이다. 현재 안곡 교우촌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영남 지역 천주교 사목의 거점이 됐던 신나무골성지에서 최양업이 걸어온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 최양업과 많은 선교사들 거쳐간 영남 지방 신앙의 요람

 

예로부터 단풍나무의 한 종류인 ‘신나무’가 많아 이름 붙은 신나무골은 대구에서 서북 방향으로 20㎞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좁게는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부터 넓게는 도암·완정·왜관의 가실·동명의 어골 등 인근의 교우촌을 모두 포함하기도 한다.

 

신자들이 처음 신나무골에 살기 시작한 것은 1815년 을해박해 때였다. 청송의 노래산, 진보의 머루산, 일월산 산중의 우련전과 곧은정 등의 교우촌에 살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신나무골로 숨어들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조선대목구 창설 이후, 신나무골은 영남 지방 선교의 중심지가 됐다. 1831년 조선대목구 창설 후 1837년부터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샤스탕 신부가 신나무골과 언양 등지에 머물면서 한반도 남쪽 지역을 맡아서 순회 전교를 하기 시작했다. 1839년 기해박해로 샤스탕 신부가 순교한 후에는 다블뤼 신부가, 1849년부터 1861년 6월까지 12년간은 최양업 신부가 이곳에 방문해 성사를 줬다고 전해진다.

 

최양업이 과로로 쓰러진 후에는 다시 다블뤼 신부와 리델 신부가 이 지역을 맡았지만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신나무골의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박해가 잦아들면서 신자들이 다시 모여들었고, 1882년부터는 아쉴 폴 로베르 신부(Achille Paul Robert·한국명 김보록)가 순회 선교를 시작했다. 특별히 경상 지역 선교를 위해 1885년 후반 신나무골에 사제관을 지어 정착한 로베르 신부는 이듬해 한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자 이곳 신나무골을 거점 삼아 활발한 전교 활동을 펼쳤다.

 

 

신나무골성지는 옛 교우촌 우물터를 복원해 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 선조들의 삶과 신앙 떠올리며 기도하는 공간

 

신나무골 성역화는 1973년 성지 개발 기금을 모금하면서 시작됐다. 4년 뒤인 1977년 ‘대구 천주교 요람지 기념비’를 세운 이후 2차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순교자 이선이의 묘가 1984년에 이곳으로 이장됐다. 그리고 대구 지역 첫 본당 터를 복원해 2차 개발을 완료했는데, 이때 로베르 신부의 사제관과 신나무골 학당(명상의 집) 등을 복원하고, 로베르 신부의 흉상도 건립했다.

 

이후 대구대교구는 대구본당(현 주교좌계산본당)이 처음으로 지은 교회 건축물인 십자형 한옥성당을 신나무골성지에 복원하고 2019년 5월 2일에 봉헌식을 거행했다.

 

복원된 한옥성당 옆에는 당시 모습으로 재현된 사제관과 순례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3차 개발을 통해 새 단장한 성지는 총 2145㎡ 면적으로 그중 성당은 145.80㎡, 옛 사제관은 32.90㎡ 규모다. 한옥성당 지붕 위 십자가와 창문 등은 옛 사진을 토대로 재현했으며 막새기와와 담장 등에 있는 십자가도 주교좌계산성당의 초창기 대문 담장에 있던 문양을 본떠 만들었다. 로베르 신부 사목활동의 거점이었던 신나무골 초가 사제관은 그가 머물렀던 새방골 사제관의 사진을 활용해 복원했다. 성당과 사제관 뿐 아니라 우물터와 빨래터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 신앙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 있다.

 

성당 뒷면에는 로베르 신부의 일대기를, 카페 등 다목적 용도로 사용하는 초가 한옥의 외벽은 ‘로베르 신부와 계산성당’, ‘보두네 신부와 전동성당’, ‘죠조 신부와 초량성당’, ‘파이야스 신부와 가실성당’ 등의 내용을 담은 타일성화로 꾸몄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