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천 시인 / 飛天
나는 종이었다. 하늘이 내게 물을 때 바람이 내게 물을 때 나는 하늘이 되어 바람이 되어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그의 괴로움을 물을 때 그의 괴로움이 되었고 그의 슬픔을 물을 때 그의 슬픔이 되었으며 그의 기쁨을 물을 때 그의 기쁨이 되었다. 처음에 나는 바다이었다. 바다를 떠다니는 물결이었다. 물결 속에 떠도는 물방울이었다. 아지랑이가 되어 바다 꽃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바램이었다. 처음에 나는 하늘이었다. 하늘을 흘러 다니는 구름이었다. 구름속에 떠도는 물방울이었다. 비가 되어 눈이 되어 땅으로 내려가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처음에 그 처음에 나는 어둠이었다. 바다도 되고 하늘도 되는 어둠 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그리움이며 미움이고 말씀이며 소리였다 참으로 오랫동안 나는 떠돌아다녔다. 내 몸 속의 피와 눈물을 말렸고 뼈는 뼈대로 살은 살대로 추려 산과 강의 구석구석에 묻어 두었고 불의 넋 물의 흐름으로만 남아 땅 속에 묻힌 하늘의 소리 하늘로 올라간 땅 속의 소리를 들으려 하였다. 떠돌음이여. 그러나 나를 하늘도 바다도 어둠도 그 무엇도 될 수 없게 하는 바람이여. 하늘과 땅 사이에 나를 묶어두는 이 기묘한 넋의 힘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게 하는 이 소리의 울림이여
박제천 시인 / 月明
한 그루 나무의 수백가지에 매달린 수만의 나뭇잎들이 모두 나무를 떠나간다 수만의 나뭇잎들이 떠나가는 그 길을 나도 한 줄기 바람으로 따라나선다 때에 절은 말의 무게 허욕에 부풀은 마음의 무게로 뒤쳐져서 허둥거린다 앞장서던 나뭇잎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쩌다 웅덩이에 처박힌 나뭇잎 하나 달을 싣고 있다 에라 어차피 놓친 길 잡초더미도 기웃거리고 슬그머니 웅덩이도 흔들어 놀 밖에 죽음 또한 별것인가 서로 가는 길을 모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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