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조원 시인 / 아홉 시 뉴스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9.

조원 시인 / 아홉 시 뉴스

 

 

아홉 시 앵커는

아홉 시 아닌 시간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

 

투혼의 연기력으로 너는 정말 죽어 버렸다

앵커는 냉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오래된 연인이어도,

 

잠들기 전 아홉 시는

무참한 것들을 무심히 넘길 수 있는 시간

아무것도 아니라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잠들 수 있는 시간

 

내가 꾸는 꿈이 살해당해도 좋아. 커튼이 닫히면

인형의 머리는 모두 사라질 테니까

 

마지막으로 목격한 건 피해자의 죽음이었을까

삶의 절규였을까. 아홉 시가 저녁인 사람들과

아홉 시가 밤인 사람들이 모호한 하품을 할 때

 

특종이 되려면 메두사의 머리가 필요해

줄기를 베어냈을 뿐인데

수십 마리 목숨쯤 한 번에 날려버리는

골목마다 죽은 뱀을 매달고

한여름 밤, 오싹하게

수박화채나 즐기면서

 

똥파리 같은 씨,

씨 같은 똥파리들이 우글거리는 숟가락으로

피를 퍼먹는 느낌이야

뱉어내기 성가시고

삼키기도 역겨운 이야기들

 

미결의 아홉 시에는

저녁밥 먹고 야식을 채운 사람과

야식 먹고 디저트를 즐긴 사람이

졸음과 잠 사이를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흰 장갑의 수사단이

마비된 얼굴에 바리케이드를 치기 전까지

 

반년간 『상상인』 2022년 하반기호 발표

 

 


 

조원 시인

1968년 경남 창녕 출생. 동의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슬픈 레미콘』(푸른사상, 2016)이 있음. 현재 <잡어>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