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태준 시인 / 비단 한 필
당신한테 오간 길 감으면 비단 한 필은 족히 나올 터.
이젠 슬며시 손을 놓으셔도…
내 머리 위 오리나무 하늘에 마구 길을 내는 새를 따라가셔도…
가시는 숲 어디인지 주소 주지 않으셔도…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저녁놀 바라보는 하늘은 하나
이 비단 한 필이면 어느 마을 살아도 마음거지는 면할 터.
비단 올올이 풀리는 추억만 감아도 이생에서는 다 감지 못할 터.
- 『기독시문학』 21년도 하반기호에서
감태준 시인 / 식탁 둘레
식탁 둘레에 모여 있는 의자들을 쳐다본다 다들 조용하다 두 딸은 시집 가고 아내는 늦는 아들을 기다리다 방에 들고
나는 슬그머니 아내의 의자에 가서 앉아본다 아들 옆의 끝엣자리 이 위치에서 아내는 밥 먹는 식구들을 둘러보았으리 아침상에 보이지 않는 두 딸의 의자를 느끼고 아픈 젖을 한번 더 떼기도 하였으리
그런 날이 또 올 것이다 그때에도 아내는 또 한 젖을 떼며 의자 구석구석을 닦고 문질러 윤을 내고 있으리
불을 끄면 식탁 둘레가 더 적막할 것 같다 불을 끈다 아내의 얼굴이 꺼지지 않는다
-시집 『역에서 역으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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