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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루 시인 / 공원의 표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24.

김루 시인 / 공원의 표정

 

 

  우리는 셋이 되어 공원을 걷지

  셋이라는 건 모두 혼자인 거야

 

  저녁 산책이 밝아졌다 어두워진다

 

  팔짱을 낀 연인을 지나 장미정원을 지나 풍차 앞에서 구름다리에 오른다

 

  우리는 걷다 웃고 웃다 반성한다

 

  날씨를

  공원을

  혼자를

 

  우린 왜 셋이면서 혼자인 걸까

 

  자전거를 타며 웃는 연인으로 출발해도 좋았을 걸

 

  강아지가 온다 하얗게 온다 혀를 내밀며 정겨운 꼬리로 온다

 

  가까이 더 가까이

 

  충혼비 앞에서 우리는 선다

 

  여기엔 거미뿐이구나

 

  거미가 한 발 한 발 발등을 딛고 올라와 묵념한다

 

  허공에서 노을 지는 아버지

 

  우리는 다시

  셋이 되어

  바람의 몸속에 들어앉는다

 

  너무 깊게 들어온 걸까

 

  죽은 아버지가 따라오다

 

  붉게 일어난다

 

  밟고 있는 그림자가 무덤이었구나

 

  검은 옷을 입고

  저마다의 숲으로 우리는 흩어진다

 

2022년 제2회 구지가문학상 수상시

 

 


 

 

김루 시인 / 밤에 도착한 리스본

 

 

나무를 보면 새가 되는 거리

세바스티앙의 담배 가게*를 읊조리며 거리를 날아요

 

일요일의 사람들은

허공을 나는 게 사람인지 새인지 관심 없어요

 

죽은 사람만 말을 걸어오는 리스본

 

페소아와 눈인사를 나누면

나무젖을 빨다 죽은

아기귀신이 엄마 젖을 찾아요

 

오빠는 울지만 젖을 나눌 수는 없어요

 

젖은 빨수록 왜 허기가 지는 걸까요

꺼진 배를 움켜쥐고

나무 품에 안겨 잠이 들어요

 

새들이 발목을 쪼아대는

바람을 따라

불 켜진 담배 가게

방의 창문을 세며 리스본에 닿으면

 

죽은 사람이 자꾸 말을 걸어요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 「담배가게」 첫 구절을 읆조리는 앵무새

 

계간『 미네르바』 2022년 봄호 발표

 

 


 

김루 시인

2010년 《현대시학》 21회 신인성 통해 등단. 2021년 울산문인협회 올해의작품상, 2022년 제2회 구지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