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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임백 시인 / 거미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26.

김임백 시인 / 거미줄

 

 

거미줄에 걸려든

잠자리 한 마리 그네를 타고 있다

이슬이 별을 몰아내는 이른 아침

 

햇살 받으려

온 팔 치켜든 소나무 가지 끝

오르락내리락 실 풀어내며

자기만의 영역 엮어가던 거미

나를 그만 내려 주세요

애원했지만 묵묵부답

 

잘난 척 날갯짓하며

허공 휘젓던 잠자리

얕잡아보고 들어간 거미줄

그 언저리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바람이 분다

듬성듬성 보이는 조각난 하늘엔

굶주린 구름 떼들 떼거리로 몰려들고

태양은 눈 지그시 감고 있다

 

마침내 하나의 슬픔을

못물처럼 완벽히 가두고 말았다

둘 다 열반에 들었는지

미동이 없다

 

 


 

 

김임백 시인 / 보리밭

- 보리 서리하던 시커먼 입술

 

 

남풍이 나를

고향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지금쯤 보리밭 비단결처럼 넘실거려

종달새가 제일 먼저 반겨줄 텐데

서너 평 남짓 보리밭

심심한 듯 먼 산 바라보고 있을 뿐

구수한 보리 내음 어디로 갔나

 

고사리 같은 손 밭고랑 휘젓고 다닐 때

종달새 날갯짓으로 응원했었지

누렇게 익은 보릿단 옮길 때면

까칠한 가시 온몸 찔러대어

농사꾼에게 시집 안 갈 거야

찔끔 눈물 흘렸었지

 

보리 서리하다 들켜

시커먼 입으로 줄행랑쳤던 친구들

지금 어디에서 서녘 하늘 바라보고 있나

허리 꺾인 바람 보리밭에 쓰러져

넘실거리면 바둑이와 달리기 하던

밭고랑 보리밭

 

—계간 <詩하늘 1021>(2021년 여름호)

 

 


 

김임백 시인

1962년 경주 출생. 필명 김설아(金雪娥). 『대구문학』 및 중국 연변시총서 『 시향만리』 『장백산』 등으로 작품 활동. 호미곶문화예술제 시부문 장원, 산문부문 우수상 수상. 백산여성문예상 시부문 백산도자기상 수상. 제 14225호 통일부장관상 문학부문 대상 수상. 시집 『 햇살 비치는 날에』 외 공저 다수. 한국문인협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달성문인협회 회원. 한중 북방문학회 회원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상임시인. 한국 시낭송가로 활동. 현재, 대구시인학교 홍보부장. <사림시>, <쪽빛> 시동인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