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백 시인 / 거미줄
거미줄에 걸려든 잠자리 한 마리 그네를 타고 있다 이슬이 별을 몰아내는 이른 아침
햇살 받으려 온 팔 치켜든 소나무 가지 끝 오르락내리락 실 풀어내며 자기만의 영역 엮어가던 거미 나를 그만 내려 주세요 애원했지만 묵묵부답
잘난 척 날갯짓하며 허공 휘젓던 잠자리 얕잡아보고 들어간 거미줄 그 언저리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바람이 분다 듬성듬성 보이는 조각난 하늘엔 굶주린 구름 떼들 떼거리로 몰려들고 태양은 눈 지그시 감고 있다
마침내 하나의 슬픔을 못물처럼 완벽히 가두고 말았다 둘 다 열반에 들었는지 미동이 없다
김임백 시인 / 보리밭 - 보리 서리하던 시커먼 입술
남풍이 나를 고향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지금쯤 보리밭 비단결처럼 넘실거려 종달새가 제일 먼저 반겨줄 텐데 서너 평 남짓 보리밭 심심한 듯 먼 산 바라보고 있을 뿐 구수한 보리 내음 어디로 갔나
고사리 같은 손 밭고랑 휘젓고 다닐 때 종달새 날갯짓으로 응원했었지 누렇게 익은 보릿단 옮길 때면 까칠한 가시 온몸 찔러대어 농사꾼에게 시집 안 갈 거야 찔끔 눈물 흘렸었지
보리 서리하다 들켜 시커먼 입으로 줄행랑쳤던 친구들 지금 어디에서 서녘 하늘 바라보고 있나 허리 꺾인 바람 보리밭에 쓰러져 넘실거리면 바둑이와 달리기 하던 밭고랑 보리밭
—계간 <詩하늘 1021>(202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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