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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27) 가을 숲의 단상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9.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27) 가을 숲의 단상

형형색색 단풍숲에서 음미해보는 인생

가톨릭평화신문 2022.11.27 발행 [1688호]

 

 

 

 

숲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숲은 각기 다른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또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같은 숲이라 하더라도 계절에 따라 심지어는 시간에 따라 보여주는 모습이 다르다. 그래서 늘 숲은 신비하고 호기심을 주는 곳이다. 그런 숲의 다양성을 잘 나타내주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라고 생각한다. 가을을 성숙과 풍요의 계절이라고 표현하듯 숲에서도 계절의 풍요와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때가 바로 늦가을 철이다.

 

사람들은 가을을 ‘쓸쓸한’ 계절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가을에 보여주는 숲은 그런 표현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화려하고 다양한 풍경이다. 마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마지막 졸업작품을 전시하듯이, 숲은 일 년 동안 열심히 살고 그 삶을 이때 보여준다. 봄부터 한여름을 지나 열매를 맺는 가을까지 온 힘으로 각각의 역할을 했던 숲의 나무들이 이젠 조용히 물러갈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가을 숲의 백미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단풍이다. 옅은 노란색에서 짙은 노랑, 불그스레한 것에서 진홍빛의 단풍…. 아마 이 세상의 가장 뛰어난 화가라도 숲의 그 색을 표현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숲길을 걷다 보니 한 줄기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이내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바람결에 덜어진 한 장의 낙엽이 어깨에 와 닿는다. 그 낙엽을 집어 들고 그간 겪은 삶의 과정을 생각해 본다. 한겨울 훌훌 옷을 벗고 추위와 싸우던 나무는 3월 어느 햇살이 간지럽게 비치던 날, 가지에서 이 잎을 세상에 내밀었다. 4월과 5월, 이제 새싹같이 여렸던 잎사귀는 제법 커져 열심히 광합성을 하여 나무를 살찌우고 키를 키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잎은 공기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나무를 키운 후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산소를 만들어 낸다. 이 잎은 자기가 만들어 낸 공기가 이 세상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가 그 삶을 살아가는 필수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우리 인간의 마음으로 견주어 볼 때, 나 때문에 어떤 사람이 살아간다면 자기의 중요성을 뻐기고 우쭐대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나뭇잎은 그저 세상과는 무관한 듯 제 일만 열심히 했다. 가끔 바람이 불어와 흔들어도 그 역경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일했고, 때론 벌레가 찾아와 잎의 살을 갉아 먹어도 별다른 저항 없이 그 몸을 내주었다.

 

어깨에 떨어진 낙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했다. 햇볕에 반사되는 낙엽의 색깔은 어찌 보면 노랗기도 하고 또 붉은색이 돌기도 한다. 지금 내가 주워든 잎은 바로 그 봄 태어나서부터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과 더불어 열심히 생활하고 이제 자기의 역할을 다한 후 스스로 땅에 묻히기 위해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다. 이 낙엽은 이제 땅에서 자기의 몸을 분해해 새로운 생명을 위한 비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의 원천으로 살아남아 길이길이 그 삶을 살아갈 것이다.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 부른다. 특히 가을의 숲은 사색과 철학의 좋은 장소이다. 숲에 들어가면 복잡한 세상과 단절된 고적감을 주고 그 고적감은 우리를 철학자로 만든다. 가을 숲에서 앞서 말한 단풍잎의 일생을 되새기며 나를 돌아보고 또 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반성과 자기 성찰은 새로운 미래를 열고 바뀐 나를 만드는 기초이다. 가을 숲은 그래서 우리의 생을 풍요롭고 새롭게 만든다.

 

 


 

신원섭 라파엘 교수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