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소 시인 / 젤리
젤리를 흙 속에 가두면 사람을 밀봉하듯 부패하지 않는 기분
만나고 싶은 얼굴은 꺼내 볼 수 없나 손톱이 지나는 자리마다 어둠을 무너뜨리면 눈부심은 혼잣말할까?
밤새 어떤 꿈을 꾸었어? 심폐 소생하듯 몸을 털어 보지만 감은 눈도 뜬 눈도 보이지 않는다
주먹을 쥐면 과즙이 팡 터진다 마르지 않는 얼룩은 홀로 노는 아홉 살처럼 잔혹하다
너 살았니 죽었니? 혼잣말하며
― 『가장 희미해진 사람』,걷는사람, 2022.
김미소 시인 / 기도를 해도 되겠습니까
연못을 파내러 온 일꾼들이 서툰 몸짓으로 묻는다 잠시 기도를 해도 되겠습니까
파지를 깔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 한다 일꾼들이 가지런히 눕혀 둔 담배꽁초엔 고양이 그림, 담배 한 보루 사다 주니 놀라며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다
어떤 신은 가지런히 누운 담배를 일으킨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먼지를 일으킨다 육체를 일으킨다
연꽃 같은 마음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진흙탕을 걸어 나간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젖은 무릎을 털어놓고
― 『가장 희미해진 사람』,걷는사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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