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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미소 시인 / 젤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2.

김미소 시인 / 젤리

 

 

젤리를 흙 속에 가두면

사람을 밀봉하듯 부패하지 않는 기분

 

만나고 싶은 얼굴은 꺼내 볼 수 없나

손톱이 지나는 자리마다

어둠을 무너뜨리면

눈부심은 혼잣말할까?

 

밤새 어떤 꿈을 꾸었어?

심폐 소생하듯 몸을 털어 보지만

감은 눈도 뜬 눈도 보이지 않는다

 

주먹을 쥐면 과즙이 팡 터진다

마르지 않는 얼룩은

홀로 노는 아홉 살처럼 잔혹하다

 

너 살았니 죽었니?

혼잣말하며

 

― 『가장 희미해진 사람』,걷는사람, 2022.

 

 


 

 

김미소 시인 / 기도를 해도 되겠습니까

 

 

연못을 파내러 온 일꾼들이

서툰 몸짓으로 묻는다

잠시 기도를 해도 되겠습니까

 

파지를 깔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 한다

일꾼들이 가지런히 눕혀 둔 담배꽁초엔 고양이 그림,

담배 한 보루 사다 주니

놀라며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다

 

어떤 신은 가지런히 누운 담배를 일으킨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먼지를 일으킨다

육체를 일으킨다

 

연꽃 같은 마음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진흙탕을 걸어 나간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젖은 무릎을 털어놓고

 

― 『가장 희미해진 사람』,걷는사람, 2022.

 

 


 

김미소 시인

1989년 서산 출생.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9년 제8회 『시인수첩』 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