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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찬호 시인 / 저녁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5.

송찬호 시인 / 저녁별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에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송찬호 시인 / 봄날

 

 

봄날 우리는 돼지를 몰고 냇가에 가기로 했었네

아니라네 그 돼지 발병을 했다 해서

자기의 엉덩짝살 몇 근 베어 보낸다 했네

 

우린 냇가에 철판을 걸고 고기를 얹어 놓았네

뜨거운 철판 위에 봄볕이 지글거렸네 정말 봄이었네

내를 건너 하얀 무명 단장의 나비가 너울거리며 찾아왔네

그날따라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더없이 향기로웠네

 

이제, 우리들 나이 불혹이 됐네 젊은 시절은 갔네

눈을 씻지만, 책이 어두워 보인다네

술도 탁해졌다네

 

이제 젊은 시절은 갔네

한때는 문자로 세상을 일으키려 한 적 있었네

아직도 마비되지 않고 있는 건 흐르는 저 냇물뿐이네

아무려면, 이 구수한 고기 냄새에 콧병이나 고치고 갔으면 좋겠네

 

아직 더 올 사람이 있는가, 저 나비

십리 밖 복사꽃 마을 친구 부르러 가 아직 소식이 없네

냇물에 지는 복사꽃 사태가 그 소식이네

 

봄날 우린 냇가에 갔었네, 그날 왁자지껄

돼지 멱따는 소린 들리지 않았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술잔만 띄우고 돌아왔네

 

 


 

 

송찬호 시인 / 봄날을 가는 山經

 

 

이그, 저기 가는 저것들 또 산경 가자는 거 아닌가

멧부리를 닮은 잔등 우에 처자를 태우고

또랑물에 적신 꼬리로 휘이 훠이 마른 들길을 쓸고 가고 있는 牛公이

 

어깻죽지 우에 이름난 폭포 한 자락 걸치지도 못한

저 비루먹은 산천이 막무가내로 봄날 산경 가자는 거아닌가

일자무식 쇠귀에 버들강아지 한 움큼 꽂고 웅얼웅얼 가고 있는 저 풍광이

 

세상의 절경 한 폭 짊어지지 못하고 춘궁을 넘어가는

저 비탈의 노래가 저러다 정말 산경의 진수를 찾아 들어가는 거 아닌가

살 만한 땅을 찾아 저렇게 말뚝에 매인 집 한 채 뿌리째 떠가고 있으니

검은 아궁일 끌어 묻고 살 만한 땅을 찾아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저 신선 가족이 가고 있으니

 

 


 

송찬호 시인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학교 독문학과 졸업. 1987년 <우리시대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분홍 나막신』, 디카시집 『겨울 나그네』, 동시집 『저녁별』 『초록 토끼를 만났다』 『여우와 포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