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 시인 / 국사발
설거지를 하다 발견한 금이 간 국사발 그러고 보니 참 오래도록 내곁에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가느다란 실금 언뜻 보면 멀쩡한 그릇으로 보인다 생을 놔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마음에 실금을 안고 살아온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를 붙들어 잡아 준 모세혈관들 그래도 그릇이라고
아직도 심장에서 나오는 뜨거운 피가 매일 아침 담긴다 담기면 비우고 담기면 또 비우며 시지프스처럼 살아온 생이다
오십 중반을 넘기니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다리가 저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린다 작은 바람에도 마음에선 폭풍이 인다 실금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보다 우여곡절을 더 담았던 '나' 라는 그릇 다행히 아직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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