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옥 시인 / 중얼거리다
희뿌연 창문으로 지나가는 뜨거운 해를 혓바닥으로 감아 들이지 못한 화분 속 수척한 이파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내 몸에 난 말라버린 이파리 몇 개를 툭 떼어낸다
햇빛만 비추면 사라질 이슬을 붙잡고 내 생엔 새를 넉넉하게 품을 울창한 숲이 없었지 내 중얼거림이 우물을 판다
누군가 내게 건초냄새가 난다고 말했지 금 간 벽을 타고 개미떼 가는 걸 바라보며 금이 간 것들은 길이 된다고 중얼거린다
시들어버릴 준비가 된 꽃에게 물을 주면 부러진 시간도 생기 있게 살아날까 내일의 날씨는 건기를 지나 가뭄을 예보하고
능선들은 달을 베어 먹으며 저녁을 데려오고 가끔 달도 나무에 기대어 쉬고 싶을 때 있지 잎사귀 떨어진 나무를 만나면 쓸쓸해지는 시간 외도는 이혼사유가 아니어도 무능력은 이혼사유 1위라는 신문을 깔고 자장면을 먹는 저녁 바람 많은 동네 내 바람개비만 돌아가지 않고 바깥보다 전등 켠 내 방안이 더 어둡다
하루라는 절벽을 기어올라 몸에 무덤을 달고 꽃을 피우는 아내는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1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현미 시인 / 구리 외 2편 (0) | 2023.03.16 |
---|---|
차의갑 시인 / 사과의 속내 외 1편 (0) | 2023.03.15 |
안이숲 시인 / 자음들의 수다 (0) | 2023.03.15 |
서요나 시인 / 울리 리모네크 외 1편 (0) | 2023.03.15 |
신진향 시인 / 그 깟 외 1편 (0) | 2023.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