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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주희 시인 / 포스트잇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25.

장주희 시인 / 포스트잇

 

 

 벽에 다시 붙어 있기를 꿈꾼다 그가 꿈꾸는 벽은 빛이 들어오고 오늘 밤에 용서를 하고 내일 밤에 다시 용서를 하고오늘 밤에 용서를 하고 내일 밤에 다시 용서를 하고 모레  밤에도  글피 밤에도 다시 용서를 하는 것이다 내 메모에는 아무것도 없는 날이 없고 계속 꿈을 꾸고 있고 오늘 용서가 된 건지 안 된 건지 모른다  그가 모르는 벽은 얼굴이 작고 소리가 쓸쓸하게 낮아지며 빠르게  달아나는 작은 벌레를 죽이고 시계도 없다 다시 꿈을 꾸는 당신은 아름다운 당신의 해가 나고 다시 용서할 수 있다는 약속이 깨어지고 있다 무너지는 벽에는 수많은 눈동자가 그려져 있다 벽이 벽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가 처음 캄캄한 벽을 바꾸고 있다  벽의  좁은 틈새를 통해 뜨거운 햇빛이 조용히 들어오고 있다 당신은 벽 위에 있는 무엇인가를 떼어 내고 있다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떼어 낼까 당신은 너무 자주 벽에 대해 생각한다 햇빛의 개수로 벽의 개수를 기억한다 당신은 벽에서 조금 떨어져 당신을 깊이 이해한다 벽은 꽤 튼튼해 보이지만 끝끝내 당신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쿵쿵거리는 소리에 한쪽의 벽에서 날개가 발견되고 깊고 가느다란 이야기가 생겨난다 구겨진 종이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펴지기도 한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1월호 발표​

 

 


 

장주희 시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2020년 《시와 산문》 신인상 당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나는 하늘에 어떤 구름이 있는지 몰라』(천년의시작, 2022)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