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예 시인 / 환승
장송곡이 울린다
담에서 피다가 화들짝 멈춰버린 왕고들빼기!
활짝 열리는 대문을 미친 듯이 빠져나와 달려가는 소식
(신의 공식1: 뒤돌아보지 않기)
일찍 죽은 그처럼.
-시집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어요’, 발견, 2020
이승예 시인 / 모넴바시아*
지진에 흔들리며, 흔들리며 다짐했나 대륙에서 떨어져 나가 물고기가 되어야지
돌계단을 오르다 지붕 사이로 셔터를 누르면 저문 중세의 풍경들이 화각 안으로 모여든다
십자가에 박힌 못 자국 속으로 지는 해를 본다
뺏기고 뺴앗았던 시간의 반복을 견뎌와 끝내 살아남아 피어나는 꽃들은 물고기의 꿈을 섬세하게 섬의 역사로 기록하는지
경건한 시간에 찾아오는 것은 오직 모넴바시아* 이곳으로의 진입은 절박하게 절벽을 걷듯 스스로 고난을 지고 저 좁은 통로를 걸어오는 당신과 저 좁은 통로를 걸어오다 되돌아가는 당신과
모두 차별 없이 저물어 가시지요
나는 하룻밤 묵으며 흔들림은 생을 조금 더 허락한 거라는 지느러미의 불립문자를 읽는다
간밤 내내 손바닥을 통과하여 이제 막 십자가를 뚫고 나온 못 끝이 시작이 되는 해가 밀려 나오는 일
손바닥을 이마에 대고 해를 가린다 에게해 쪽으로 방향을 튼 물고기를 향해 일제히 몸을 돌려 가파르게 흔들리던 꽃잎은 오늘 무사하다
* 모넴바시아: 오직 하나의 입구 *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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