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용 시인 / 달과 소년
강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사랑을 훔친 소년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열아홉 소년의 순정이 저 눈발과 함께 소멸해 가고 있다
고통도 살아있어 죽어가는 것도 축복이라며 한 몸 부서지고 있다
배고픈 아이 기도하는 아이 간절한 아이
달을 따먹으려 노모의 집 쓸쓸한 안마당에서 때로는 천보산(天寶山) 내다뵈는 아파트 갈비뼈에 매달려 홍시처럼 오십일 년을 살아온 소년
이제 그 소년을 따먹은 흰 낮달이 지고 있다
김선용 시인 / 내가 사랑하는, 나타샤는 계실 것입니다
나를 나비리본으로 묶어 자신에게 선물로 보내라는 그녀, 나타샤
나비가 지나간 자리처럼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다
홀로 길을 걷다가 흘린 말들을 배고픈 햇살들이 쪼아 먹고 있다
어제는 길의 손을 잡고 걸었으니 나타샤, 오늘은 너의 손을 잡고 걸어야겠다
가슴에 남아 영원히 피는 꽃처럼 매일 뜨고 지는 저 달처럼
그렇게 그렇게
나타샤, 나는 너를 생각한다
-시집 『나비가 지나간 자리처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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