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섭 시인 / 말똥
한참을 찾아다녔다. 골동품이 되어버린 보기 드문 말똥 한적한 아스팔트 길 위에서 말라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걸 아버지께 드렸다
요강 위에 앉아 하혈 자리 말똥 연기를 쐬면 고통이 죄 사라진다며 어기적어기적 아기걸음 걸으셨다
말똥말똥 훈제가 되신 아버지 푸른 연기 타고 날아가셨다.
최순섭 시인 / 들국화 밥상
우리 집엔 들국화 꽃잎 닮은 밥상 하나 있지요
도란도란 일곱 식구 둘러 앉아 저녁 밥 먹던 일곱 개의 수저가 일곱 개의 꽃술이 되어 향기 내뿜던 들국화 밥상
언제부턴가 여섯 식구만 앉아서 밥을 먹다가 네 식구만, 두 식구만 앉아서 밥을 먹다가 지금은 어둑한 한 사람만 먼 산을 보며 수저를 드는
이제 그만 시들어서 내일이면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을 서늘한 들국화 밥상
최순섭 시인 / 산
산에 들면 세상 다 잊을까
이른 아침 배낭을 멘다.
탁 트인 하늘만 뵈는 산속에서 푹 쉴 거라고
산 나무가 수액 떨구며 안간힘을 쓰다가
가파른 능선 오른다는 걸
오늘도 까무룩 잊고 살아가는 산 아래 사람들
어디 앞산만 산인가
칼국수 먹고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막막함도 산이다. 그대와 내가
날마다 오르는 산 넘어 산
최순섭 시인 / 물소리 민박
물빛 자리가 고요하다 경계할 대상도 없고 밤사이 적막을 넘어 물소리만 들리는 시냇가에 밤이 오고, 물속에는 물속 세상의 사연만이 찰랑거린다 모두 가버린 빈자리에 별빛으로 채워진 물빛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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