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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순섭 시인 / 말똥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8.

최순섭 시인 / 말똥

 

 

한참을 찾아다녔다.

골동품이 되어버린 보기 드문 말똥

한적한

아스팔트 길 위에서

말라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걸 아버지께 드렸다

 

요강 위에 앉아

하혈 자리

말똥 연기를 쐬면 고통이 죄 사라진다며

어기적어기적 아기걸음 걸으셨다

 

말똥말똥

훈제가 되신 아버지

푸른 연기 타고 날아가셨다.

 

 


 

 

최순섭 시인 / 들국화 밥상

 

 

우리 집엔

들국화 꽃잎 닮은

밥상 하나 있지요

 

도란도란 일곱 식구 둘러 앉아

저녁 밥 먹던

일곱 개의 수저가 일곱 개의 꽃술이 되어

향기 내뿜던

들국화 밥상

 

언제부턴가

여섯 식구만 앉아서 밥을 먹다가

네 식구만, 두 식구만 앉아서 밥을 먹다가

지금은 어둑한 한 사람만

먼 산을 보며 수저를 드는

 

이제 그만 시들어서

내일이면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을 서늘한

들국화 밥상

 

 


 

 

최순섭 시인 / 산

 

 

산에 들면 세상 다 잊을까

 

이른 아침 배낭을 멘다.

 

탁 트인 하늘만 뵈는 산속에서 푹 쉴 거라고

 

산 나무가 수액 떨구며 안간힘을 쓰다가

 

가파른 능선 오른다는 걸

 

오늘도 까무룩 잊고 살아가는 산 아래 사람들

 

어디 앞산만 산인가

 

칼국수 먹고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막막함도 산이다. 그대와 내가

 

날마다 오르는 산 넘어 산

 

 


 

 

최순섭 시인 / 물소리 민박

 

 

물빛 자리가 고요하다

경계할 대상도 없고

밤사이 적막을 넘어 물소리만 들리는

시냇가에 밤이 오고, 물속에는

물속 세상의 사연만이 찰랑거린다

모두 가버린 빈자리에

별빛으로 채워진 물빛 마을

 

 


 

최순섭 시인

1956년 대전광역시에서 출생. 1978년 『시밭』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2007년 《작가연대》 등단. 시집으로 『말똥,말똥』 등이 있다. 현재 환경신문 에코데일리 문화부장, 이화여대, 동국대 평생교육원 출강,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