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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배창환 시인 / 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1.

배창환 시인 / 꽃

 

 

너의 고운 흔들림 앞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바람 한 점 없어도 흔들리고

바람 아무리 불어도 꺾이지 않는

 

너의 그윽한 입술 위에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햇살 한 올 포개주고 싶다

새벽보다 일찍 열리고

늦은 저녁보다 오래 남아 빛나는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고

어둠 속에서도 그 빛 잃지 않는

잠깐이면서 끝없이 목숨 이어갈

 

너의 뜨거운 이마 위에

세상에서 가장 서늘한 별빛 하나 얹어주고 싶다

 

그 오랜 낮밤을 건너, 오늘

이리도 귀한 반짝임으로 내 앞에 마주 선

 

 


 

 

배창환 시인 / 아버지의 추억

 

 

우리 집 짓는데 일꾼 중에 꼭 지금의

내 나이만 한 아버지를 닮은 분이 있다

나보다 훨씬 늙으신, 얼굴이 검게 그은 사진 속의 아버지처럼

담 그늘에 앉아 담배도 뻑뻑 피우시고

막걸리도, 참으로 받아낸 국수도 그냥 들이켜신다

내일부턴 일이 없다며 돈 받아 세어선 뒷포켓에 찔러넣고

술 한잔 하러 가자며 쓸쓸히 돌아서는 그 모습이

연생 아버지다

아마도 시장통 포장마차 선술집으로 가시는 거다

 

언젠가 대구 반고개서 시외버스 기다리다

뒷모습이 꼭 닮은 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아 · 부 · 지 · 이ㅡ

달려가며 고함 꽥 지르고 싶었지만

발이 땅에 달라붙어서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보내지 않아서 가만히

아버지……

하고 말았다

 

아부지……

이렇게 중얼거리면 더욱 그리워지는

아버지 때문에, 시장통 술집에 앉아

그 옛날 아버지와 가 본 가천 장날 그 돼지국밥에

막걸리 한 병 따라놓으면

목이 뜨거워 술이 술술 잘 안 넘어간다

아버진 이런 날도 산중에 계신다

흙이 되신 지 벌써 오래다

 

 


 

배창환 시인

1955년 경북 성주에서 출생. 경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1년 《세계의 문학》에 〈1980년 어느 날〉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잠든 그대』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백두산 놀러 가자』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겨울 가야산』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 등. 「분단시대」 동인으로 활동. 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