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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하 시인 / 학림도
조그만 섬이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공문서 받았다 외롭게 떠 있는 섬이 아니게 되고 바라만 보던 입장을 변경하고
기다림의 끝이 있을 줄 몰랐지만 짐작 못 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일 년에 두어 번 오는 태풍보다 설렌다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잡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서 잡고 있는 일 운동화를 걱정하면서 파도 가까이 발을 옮기는 일 섬에서 차 빼달라는 전화를 받는 일
바지락이 띄엄띄엄 박혀있다 하나 또 하나 둘 셋
갈매기의 눈을 꿴 가로등이 빛을 흘릴 때 귀를 막은 이어폰 호주머니에 찌른 손 까딱거리는 머리/ 흔들리는 어깨
걸음만큼 멀어지는 노래처럼 흩어지는 끊임없이 잊어야 하는 그런 일들
밤바다 사진 속 네 개의 불빛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크기지만 둘은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하고 둘은 새벽만 기다린다 둘은 배를 기다리고 둘은 길을 비춘다
바다 건너 바다로 기다림에 끝이 있다는 소식이 온다
김새하 시인 / 창문에 서는 이유
세면장에서 비누를 질기게 갉아먹는 생쥐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떼
가르랑 거리는 소리는 화장대를 딛고 쌓아 놓은 빈 상자를 지나 창틀을 딛고 선다
어느 날의 밤까지만 해도 J는 쾅쾅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아프다고 집 안을 서성였었다 숲 속처럼 고요한 내 눈 속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눈빛을 맞췄었다
J는 물속으로 꽃잎 속으로 아니면 단지 아주 먼 곳으로
부드러운 가슴털에 손을 묻으면 새소리와 눈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었다 그렇게 사라진 J
하늘과 지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창틀에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 위자료로 받은 도시 풍경을 함께 볼 필요나 이유가 없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밤낮을 채운다
지루한 털은 고양이가 되어 여기와 저기로 떠돈다 무엇에 매달려야 할까
-시집 <도망칠 수 없다면>에서
김새하 시인 / 낯섦
이해 결국 착각으로부터의 시작 안다고 생각한 것으로부터의 배신
무엇이었는지 잃어버렸다
생각을 털면 낯섦이 뒹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 시작은 어디
장롱에서 나온 후드티가 엉킨다 샀는지 얻었는지 자주 입었지만 기억이 낯선 티, 자꾸 내려다본다
동그라미 없는 달력이 있다
겨울이 바쁘다는 사람들 100점짜리 시험지처럼 동그라미 가득한 달력을 가졌겠지
12월 달력은 인생을 채점하는 시험지 같아
멀리서 오는 친구 동그라미가 불편한 달력이 등을 비비적거린다
기억에 대한 침묵, 추억 되지 못하고 바람 부는 날 바스러진 낙엽으로 흩어진다 놓쳐버렸다 텅 빈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차라리 위로가 되는 시간
낯섦, 익숙하게 다가온다
김새하 시인 / 언제까지 힘내야 하는가 얼굴은 풍경을 정확히 말하면 하늘을 그의 눈을 보았다면 눈동자가 가르는 난간을 눈 감으면 한 남자가 아파트 8층에서 떨어져 비상구로 걸어가고 피는 흘리지 말아야지 한번 더 감으면 다른 한 남자는 장롱에서 넥타이를 고르고 아픔과 더 아픔으로 채워지는 하루와 다음 하루가 무서워 겨울을 잘라낼 설계도를 그리며 봄을 기다리는 아이러니 오리들은 가슴 털을 내놨지만 누구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뼈들의 연주는 30분마다 반복되고 살이 도망간 자리에 돋아난 눈은 용케 밤을 알아본다, 몽롱한 낮의 편에서 아파트값 떨어진다는 아우성 들으며 남자가 떨어지고 아이가 떨어지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아비를 용서하렴 아이야, 너는 날아올라야 한다 해지는 고요한 시간의 빛처럼 2년 전에 마지막 키스를 한 남자가 사라졌다
김새하 시인 / 장래희망
욕조의 물은 얕은수로 끌어당긴다 제 몸 식는 줄 모르고 이 몸을 끌어당겨 무얼 하려는지
뜨거운 물로 녹여 만든 붉은 푸딩을 백열등 아래 흔들어주길 몰래 바란다
조심해야 할 시간이다
항상 먼저 다가오는 이별 이미지 없는 그림을 그린다
뚝뚝 떨어져 놓인 퍼즐 조각 여백이 채워지면 우리는 무엇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뼛가루에 피를 섞고 채를 친 살을 얹어 천천히를 오랫동안 먹여 키운다면 무엇인가는 우리가 될 수 있다
비가 내리고 비를 보며 샤워를 하고 책을 펴고 비를 보고 사랑을 나누고 잠을 잔다
꿈속에서 쓴 시를 기억하려
눈꺼풀 안쪽에 새겼더니 눈을 뜨면 올라가 버린다 시인이 웃는다
김새하 시인 / 무한반복
외로움 깊이 재려는 시도
바닷가 모래 위 텐트, 잠든 아이들을 위해 통삼겹바베큐를 준비하는 사내 능숙한 칼솜씨와 적절한 소스의 양, 세심한 불 조절, 직업을 짐작하게 한다
호텔 테라스의 햇빛이 어울리는 외모지만 자연 속 사색을 좋아한다며 공기 한 토막 잘라 깔고 누웠다 시선은 선글라스 너머 바다로 향한다 어젯밤 마지막으로 내준 코발트 빛 푸딩이 일렁거린다 해변의 여인 힙업 아래 탱탱한 허벅지 죄책감 없는 사진을 시식, 입맛 다시는 식도를 뜨겁게 내려간다, 물속에서 노는 딸 해변으로 나오면 몇 조각 저며져 무료한 듯 무료하지 않은 시간을 채우는 쉬운 재료로 내정됐다
저녁 메뉴는 감자와 판타체를 곁들인 신선한 양다리, 초고속 요리를 꿈꾼다 접시에 담긴 날 것들 부끄러워 석양을 잡는다 뜨거운 양다리 육즙, 턱을 타고 내린다
슬픔이 눈물의 눈물을 닦는 시간을 배우고
다음 슬픔을 기쁘게 기다리는 동안 외로움의 방향을 찾던 나침반, 수행하지 못한 임무와 모래 무덤을 판다 눈 어두운 청개구리의 절망 비가 내린다 흠뻑 내려버려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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