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영 시인 / 흰발
고단한 몸을 끌고 당신을 건넜습니다 당신은 황폐토록 방치된 곤고한 골고다 언덕, 초근목피 또는 난방용 장작처럼 당신의 헐벗은 잔가지 내 발등 찔렀지만, 나는 당신을 건너갔습니다, 아아, 매정한 사랑, 나는 모질게도 당신을 건너고, 곤고한 골고다도 지나, 죽고 싶도록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당신을 건넜습니다,
드디어 왔는가, 당신을 건너자 내 등에 대고 비로소 당신 말했지요, 당신을 건넌 내 몸이 빠져나간 그 자리에 대고, 무정한 사람, 당신이 말입니다, 아아, 보이지도 않는, 무심히 내 귓등 지나는 소리에, 나는, 진흙투성이 내 발이 부끄러워, 물가로 갔습니다, 지푸라기, 흙먼지, 모래알이 묻은 내 발이 부끄러워 물가로 갔습니다, 그러자,
물 아래, 잔물결 치는 그 물 아래, 뽀얗고, 하얗게, 내 발 씻겨졌습니다, 아아, 옛날, 아주 먼 옛날, 당신 발등에 제가 향유를 부었을 때처럼, 드디어, 부정한 내 발, 뽀얗고, 하얗게, 맑아졌습니다
박미영 시인 / 나는 나를 증오한다, 너보다 더,
빵 거품구멍 속에 누운 내게 너는 수신 거부한 메일 되보낸다, 축축한 편지, 물 먹은 골판지처럼, 흐린 글씨, 무겁다, 내 눈은 썩은 꽃잎, 두부모처럼 흰 허벅지 위로 천천히 떨어진다, 무거운 시간의 솔기에서 떨어져 나온, 검은 실밥보다, 그 보푸라기보다, 가볍게, 구멍 뚫린 기운 자국, 네가 뻥 뚫어 놓은, 내 마음은 그 보다 더 가볍지만, 아니, 무게도 나가지 않겠지만, 멱 딴 돼지 목줄기에서 솟아나는, 피처럼, 확 내뿜는 핏줄기처럼, 햇볕에 반짝 빛나던, 석류속보다, 더 밝고 빛나던, 홍옥, 루비, 붉은 루즈 거나, 더 붉은 입수구리처럼, 선연하여, 무섭고, 처절해서, 나는 헉, 허걱, 숨 막힐 듯 외소리지른다, 그래, 처음부터 나는 나빴다, 처음부터 나빴던 나는 끝도 나쁜 나다, 누구나 다 안다, 너도, 그런 나는, 그래서 나를 증오한다, 너보다 더, 나는 나를 증오한다, 너보다 더, 지금도 빵 거품구멍 속에서 나쁜 발효를 기다리며, 나는 나를 증오한다,
박미영 시인 / 물고기눈 소년
꽃밭에, 꽃들 속에, 꽃 속 암술 자리에 물고기눈 소년 말갛게, 부조리하게 앉아있다
웃자란 줄기 위로 구근을 닮은 슬픔이 이슬처럼 떨어지면 물고기눈 소년 감이 열리지 않는 나무 아래 엄마! 벌레가, 징그러운 벌레가, 기, 어, 가, 요,,,
박미영 시인 / 불의 사원
빛에도 상처가 있다니! 드디어 얼굴을 드러내는 빛의 묘혈(墓穴)들, 아가미 닫혀가는 물고기처럼 사람들 죽음의 집을 향해 오르는 중이었다. 짓이겨진 풀에서 햇볕 냄새, 어린 새들이 무너진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송세헌 시인 / 그대 외 4편 (0) | 2025.07.21 |
|---|---|
| 김태정 시인 / 하행선 외 5편 (0) | 2025.07.21 |
| 문선정 시인 / 우리 어머니 외 4편 (0) | 2025.07.21 |
| 위상진 시인 / 푸른 지우개 외 5편 (0) | 2025.07.21 |
| 도은 시인 / 판금의 봄 외 6편 (0) | 2025.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