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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희 시인 / 모과
죽어서 썩는 시취(屍臭)로밖에는 너를 사로잡을 수 없어
검은 시반이 번져가는 몸뚱어리 썩어갈수록 참혹하게 향기로운 이 집요한, 주검의 구애를
김원희 시인 / 초설회
홀로 고요히 침잠해 있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가 비밀을 품은 듯 찾아왔다 시와의 합궁 묘미가 일탈의 외도와 견줄까 불면의 밤은 화려한 궁으로 변하고 세상 모든 것은 그가 되었다 시를 잉태한 만삭의 처녀 작두 타는 애기무당처럼 홀린 듯 접신의 위대함인지 위태함인지 시의 보살 내 안에 들다.
김원희 시인 / 주머니
누룽지와 도토리 공기알 사십구재 지낸 약과와 사탕이 한 푼 두 푼 보살들이 주고 간 지전과 쇠전으로 배부르다
동자승 주머니가 부풀어 오를수록 함께 부푼 속세의 그리움 주머니는 자루가 된다
“절집 수행자로 살라믄 한 끼 배부른 걸루 족해야 되는디 주머니가 있응께 자꾸만 욕심을 부려 뿌러, 크며는 더 큰 욕심을 부릴 거 아닌감”
주머니를 가위로 자르고 바늘로 꿰맨 공양주 노보살 까슬까슬 머리통 매만지다 눈 마주친 목어 빗속 내장까지 모두 비웠다
-시집 《햇살 다비》 불교문예, 2017
김원희 시인 / 비움과 채움
시인의 계절은 가을이지 않을까 싶어서 더 더 오토바이처럼 달려가고 싶은 가을이 오도다 도대체가 여름은 열정만 있다 뿐이지 되는게 없어서 혼줄 나게만 땀만 줄줄줄이 새어 기대 만큼은 오래가질 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지 하긴 앞뒤가 갑갑한 여름을 앞에다 두고나니 서서히 가을이 오고있다는 거 머시냐를 상기하고져 할때 고추 잠자리가 하늘하늘 쉬엄 쉬엄 쉬어가라 하네 어느덧 하루해는 가고 서편을 보면은 가물 가물 반쯤은 익어가는 노을들의 잔치상 하 하하하 하 어이없다~ 웃어보는 웃음은 서늘 서늘한 초가을 바람에, 심숭생숭 가을을 재촉하는 꽃바람만 내등뒤로 불고 있더라 기대한다 고대한다~~ 가을에 만사를 펼치련다
김원희 시인 / 강의 반란
강이 앓고 있다 북한강부터 낙동강까지
강의 일생 인간이 간섭하며 본래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옛적부터 순순히 흐르던 강줄기
4대강 프로젝트 깃발 아래 굴삭기로 곳곳이 파헤쳐 져서 음부까지 상처투성이다
물고기의 떼죽음 슬픈 강은 참다못해 서슬 퍼런 반란 중
생태계가 아찔하다
김원희 시인 / 위태한 접신
시인이란 호칭 성스럽고 부끄러워 시는 쓰지 않으려 했는데 운명처럼 그가 비밀을 품은 듯 찾아왔다
시와의 합궁 묘미가 일탈의 외도와 견줄까 불면의 밤은 화려한 궁으로 변하고 세상 모든 것은 그가 되었다
시를 잉태한 만삭의 처녀 작두 타는 애기무당처럼 홀린 듯 접신의 위대함인지 위태함인지 시의 보살 내안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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