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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아 시인 / 블랙 블랑 블랭크*
토끼는 당근을 좋아한다 동화에 나오는 토끼가 그랬다
오물오물, 입
할머니는 내게 민지*를 준다 무를 썰다 무의 윗동을 준다
오물오물, 입
토끼처럼 민지를 잘 받아먹는다
민지
민지가 사투리인 줄 알았는데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다 일본어라는 것을 알았다
내 볼은 볼그레 홍당무 되고 홍당무를 문 토끼로 변한 나는 토끼굴로 들어가 지루한 동화책처럼 당근 케이크를 열 개 스무 개 백 개를 굽고 막막한 해변에서 마녀 배달부 키키를 기다리는 심정이고
검정토끼굴은
*
고속도로 터널은 섬이 된다 터널 끝에 기다리는
블랙 블랑 블랭크
꽃이 끝의 어원이라고 당신은 말했다 줄기 끝에 기다리고 있을 꽃을 생각하는 당신의 밤을 잠시 생각하다 투명한 청포도를 따 먹는다 한 알 한 알 입 속으로
블랙 블랑 블랭크
포도 알맹이가 있던 접시 위에 뼈가 남는다 이 뼈를 뭐라 부를까 이름 없이 이름 몰라 말할 수 없는 분명 이름 있을 텐데 생겨났으니 있을 이름
블랙 블랑 블랭크
*
우리말 검정토끼굴 갈래 사전에서 찾은 꽃자루
터널 끝에 이르면 바다가 보이고
이름을 부르면 멀리 있는 사람도 내게 데려오고 거울을 벽에 걸듯이 우리는 이름을 바다에 걸고 불러본다 마주 본다 파도와 파도와 파도와 자그락자그락 자그락 서로의 이름을 섞는다
블랙 블랑 블랭크
* Black Blanc Blank * 민지. ニンジン * 미야자키 하야오. -계간 『시와사상』 2024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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