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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고싶은 곳

婦人 22名과 한사람사는 男便

by 파스칼바이런 2010. 3. 15.

婦人 22名과 한사람사는 男便

 

 

평균 신장이 180cm라는 몸짱 부족 마사이족의 마을. 입장료를 받고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마을이 많이 생겼다. 마을은 큰 마당을 중심으로 둥근 형태로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데 잡목과 가시덤불로 울타리를 했다.

 

아프리카하면 타고난 '몸짱' 부족인 마사이족을 떠오른다. 평균 신장이 180cm에 이르고,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몸매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또 뚜렷한 얼굴윤곽과 매끄러운 피부는 그들의 건강미를 더욱 살려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사이족처럼 걸어라>라는 책이 팔리고, 신기만 하면 다이어트가 될 것 같은 '마사이 슈즈'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마을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응고롱로로 분화구 근처에서 만난 마사이 족. 그들의 빨간 망토는 멀리서도 눈에 띤다.

 

요즘엔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마사이 마을이 많이 생겼다.

소몰이를 나가지 않고 관광객만 맞이하는 전문적인 마을이 있는가 하면, 남자들은 소몰이를 나가고 남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마을을 보여주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별도! 1달러를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사이족이 돈맛에 물들어 가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못 된다. 누구나 자신들의 개인공간을 공개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응분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마음 상할 이유가 없다.

 

 

85세의 아버지와 22명의 부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52명이나 된다.

2박 3일의 사파리를 마치고 모시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마사이 마을에는 85세의 남편이 22명의 부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자식은 무려 52명이나 된다. 영어로 안내를 해주는 이는 도심에서 현대식 교육을 받고 온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이다.

 

부인 중에 가장 어린 이는 15세. 70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남편이라…, 끔찍하다. 손녀, 아니 증손녀라 해도 되겠다. 85세의 남편은 마침 부족 회의가 있어서 옆 마을에 가셨다고 한다. 아직 앳된 얼굴의 막내 부인은 이미 한 아이의 엄마였다. 조심스럽게 할례를 치렀느냐고 물었다. 마사이의 여성은 할례 의식을 거치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고, 마사이의 여성에게 할례는 신성한 의무이기 때문에 그녀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물론 영어! 를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큰아들이 해준 대답이다.

 

소똥으로 만든 22개의 침실

 

 

22명의 부인 중 가장 막내인 15세의 부인. 옛된 얼굴의 그녀는 이미 한 아이의 엄마였다.

화려한 장신구로 몸치장을 한 이들이 환영의 춤을 추며 손님을 맞는다. 횡으로 줄을 서서 노래를 부르며 '아두무'라 불리는 그들의 전통춤을 춘다. 한 사람씩 번갈아 나오면서 제 키만큼이나 껑충 뛰어오른다. 이미 나이로비의 민속촌에서 보았던 춤이지만 훨씬 역동적으로 보인다.

 

단순히 그 자리에서 수직으로 뛰어오르는데 사냥에 나간 전사가 멀리 있는 사냥감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부족에게 자신의 용맹성을 보여 위협을 주기 위해서라는 큰아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사이족의 점프. 아두무라 불리는 전통춤은 수직으로 뛰어오름으로써 다른 부족에게 위협을 준다고 한다.

 

 

마을은 큰 마당을 중심으로 둥근 형태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22명의 부인들은 각자의 움집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남편은 여러 부인의 집을 돌아가며 지낸다.

 

환영 댄스에 이어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큰 마당을 중심으로 둥근 형태로 집들이 옹기종이 들어서 있는데 잡목과 가시덤불로 울타리를 했다. 다른 부족이나 야생동물로부터 방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부인마다 움집을 한 채씩 갖게 되어 있다. 뻔뻔한 85세의 남편은 무려 22개의 침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남자의 집은 따로 짓지 않는다. 매일 밤 여러 집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자는 "로테이션 시스템"이라는 말이 재미있다.

 

또 특이한 것은 그녀들이 사는 움집은 남편이 지어준 것이 아니라 시집온 부인이 자신이 살 집을 손수 지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이 아닌 다른 부인들과 함께 앞으로 살아갈 집을 짓는다.

 

 

소똥으로 만든 집과 내부. 집은 나무로 먼저 기둥을 세우고 기둥 사이에 나뭇가지를 엮은 뒤 소똥과 재를 이겨 벽을 발라 만들었다.

집은 소똥을 쌓아 만들었다. 냄새는 나지만 생각처럼 그리 심하지는 않다. 집을 지을 땐 나무로 먼저 기둥을 세우고 기둥 사이에 나뭇가지를 엮은 뒤 소똥과 재를 이겨 벽을 바른다.

 

소똥은 섬유질이며 기름기가 없어 우기에 비바람을 충분히 견뎌낸다고 한다. 또 소똥으로 지은 집은 벌레도 잘 생기지 않고 습도를 조절하며 바람을 잘 통과시켜 시원하다고 한다. 추울 땐 소똥을 모아 불을 지피니 마사이족에게 소똥은 삶의 필수품이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원형 움집의 안으로 들어가니 부엌과 두 개의 침실이 있다. 큰 것은 아버지의 방이고, 작은 것은 부인과 아이의 방이다. 방이라야 맨바닥에 나뭇가지를 엮어 깔고 그 위에 소가죽을 덮어 만든 것이다.

 

출입구에서 ! 안으로 ! 들어가는 통로는 굽어져 있다. 야생동물 침입을 막기 위한 구조란다. 하지만 출입구에는 문이 없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소통까지 막지 않으려는 배려가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내가 보기엔 소똥으로 문을 만들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말이다.

 

 

사이족의 주식은 우갈리다. (사진1) 우갈리의 재료가 되는 옥수수 가루 (사진2) 22개의 집에는 각각의 화덕이 있어 부인의 식성에 따라 요리한다. 옥수수가루에 물을 부어 천천히 끓이면 우갈리가 완성된다. (사진3) 완성된 우갈리는 무른 백설기와 같은 모양이다.

 

마사이족은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여자의 집에 신부대금으로 소를 5~10마리를 준다. 부인이 예쁘면 최대 20마리까지 주기도 한단다. 그래서 부인의 수는 남자의 능력에 따라 정해진다. 반대로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선 딸은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안내를 해주는 큰아들에게 나는 얼마 정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황한 아들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19마리 정도까지 주겠다고 눈치를 보며 억지인 듯 대답한다. 나름의 계산으론 우리나라 한우 한 마리의 시세가 500만원 정도이니 나는 1억에 가까운 몸값이란 결론.

 

사자도 노예상인도 피해가는 마사이족

 

 

22명의 부인들이 모두 나왔다. 첫째 부인은 70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고, 막내 부인은 15살밖에 되지 않는다.

전설에 의하면 마사이족은 그들의 신인 응가이 신과 하늘나라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지상을 내려다본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가 살고 싶었다. 신에게 허락을 받았지만 조건이 있었다. 함께 내려가는 소와 염소, 양을 기르고 그 젖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만 사슴을 잡아먹어 버렸다. 화가 난 신은 그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타고 내려간 밧줄을 끊어버렸다. 신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는 함께 내려간 가축들의 수가 신이 만족할 만큼 그 숫자가 불어났을 때 밧줄을 다시 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사이족은 신이 부르실 그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다른 부족들이 가지고 있는 ! 가축들도 ! 그들이 마사이족의 재산을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언제든 필요할 때면 도로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마사이족의 용맹스러움은 그들이 가축을 지키기 위해 사자에 맞서고 다른 부족과의 분쟁 과정에서 길러진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 노예제도가 성행했던 시절,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은 노예선에 실려 유럽이나 신대륙을 팔려갔다. 그러나 모든 종족이 노예로서 가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백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종족이 있었는데, 바로 마사이족과 피그미족이다. 피그미족은 유난히 키가 작은 데다 왜소했고, 마사이족은 키는 컸지만 비쩍 말라 노예로서는 별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설명을 약간 달랐다. 노예상인들이 붙잡기만 하면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마사이족 무사의 성격 때문에 노예로 끌고 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긴 사자도 피하는 마사이족을 그 누가 잡아갈 수 있었을까?

 

변화의 바람, 아쉽다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를 한 마사이 여인. 귀걸이의 무게때문에 귀는 축 늘어져 버렸다. 그들에게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마사이족들은 정착촌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도시 근로자로 유입되기도 한다. 많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달러를 벌기도 한다. 관광지로 개방된 곳은 물론, 대도시 근교에서는 변화하는 이들, 마사이족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나이로비에서 매주 열리는 마사이마켓 또한 이미 정착한 마사이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을 나오는데 부인들이 만든 구슬목걸이는 보여준다. 1개에 2달러였던 팔찌의 가격은 3개에 2달러까지 내려갔다. 여전히 전통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마사이족들도 적지 않지만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았던 용맹한 마사이족들이 구슬목걸이의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