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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성 라파엘 칼리노프스키 - 고해실의 순교자

by 파스칼바이런 2010. 3. 18.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 라파엘 칼리노프스키 - 고해실의 순교자

번역 송영웅 바오로(봉명학원 재단이사)

 

 

성 라파엘 칼리노프스키(Raphael Kalinowski, 1835-1907)는 1835년 9월 1일 리투아니아(Lithuania)의 빌나(Vilna)에서 요제프(Josef)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는데 그의 선조들은 폴란드 사람이었다.

당시 유럽은 각 나라가 경쟁적으로 군사력을 확장하고 있어서 사회 전반이 불안정한 때였다.*

그는 페테르부르크(Petersburg)에 있는 제정 러시아 군사기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졸업 후 장교가 되어 벨로루시(Belarus, 백러시아)에 있는 리토브스키(Litowski)의 브레스트(Brest)에서 공병(工兵) 장교로 근무하여 대위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1863년 외국의 압제를 벗어나기 위하여 폴란드 사람들이 일으킨 민중봉기를 러시아 황제가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보고 풀란드 독립을 위한 민중봉기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864년 그는 반란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시베리아(Siberia) 강제노동 10년이라는 중형에 처해졌다.

 

10년 동안 시베리아 오지에서 강제노역으로 일하는 동안 라파엘은 영성적으로 심오한 깨달음을 얻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자각하였다.

1874년 석방된 그는 폴란드로 귀환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의 학생 중 아우구스티노 차르토리스키(Augustinus Czartoryski, 1858-1893)는 후일 최초의 살레시오 수도회 수사 가운데 한 명으로 2004년 시복되어 현재 시성 재판이 진행 중이다.

 

관상생활에 깊이 매료된 그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가 라파엘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라파엘은 수련기와 신학 과정을 마친 후 1882년 1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가 된 그는 온 정성을 다하여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었는데 그의 그러한 열성은 신자들을 감동케 하였다.

그리고 불안한 시대에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용감하게 투쟁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스승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올바르게 인도하였다.

그는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더욱 심화시켜 나갔다.

또한 그 무렵 알베르토 흐미엘로프스키(Albertus Chmielowski, 1845-1916)를 만나 뛰어난 지혜로 그를 지도하였다.

알베르토는 후에 ‘가난한 이의 종 프란치스코회 제3회 수사회’(Brothers of the Third Order of St Francisco, Servants fo the Poor)를 설립한 인물로 1989년 시성되었다.

 

라파엘 신부는 1907년 11월 15일 바도비체(Wadowice)의 한 가르멜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사제로 서품된 후 26년 동안 수많은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그들이 영성적인 길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훌륭하게 지도한 참스승이었다.

폴란드가 배출한 영적 거장이자 영웅이었던 그가 선종하자 폴란드 온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1983년 6월 2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의 크라쿠프(Krakow)에서 라파엘 신부를 시복하였고 1991년 11월 17일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면서 ‘고해실의 순교자’로 선포하였다.

교황은 시성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제로 서품된 라파엘 신부는 … 주님의 포도밭에 가서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분은 온 정성을 다하여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 그리고 영성적인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라이신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모님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와 이웃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 깊은 깨우침을 얻도록 수많은 사람들을 잘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간을 겸손한 자세로 이러한 사도직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였고 항상 자신을 희생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단식을 하고 고행을 하였습니다. 이분이야말로 ‘그리스도께 정복된 분’입니다. 이분 생애의 전반부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의 극심한 고난으로 점철되었지만 라파엘 신부는 마침내 주님께서 다락방에서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였습니다'(요한 15,9. 13)라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또한 라파엘 신부와 함께 알베르토 흐미엘로프스키 수사를 거론하며 이 두 분이야말로 폴란드 사람들에게 신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분이라고 상찬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분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이어 이 땅에 살아가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성덕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신 분들로서, 이분들이야말로 폴란드 땅이 배출한 위대한 두 아들입니다. 이분들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그렇게 목말라 하던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이분들이 돌아가신 다음 그 열망은 이루어졌습니다."

성 라파엘 칼리노프스키의 축일은 11월 19일이다.

 

* 폴란드는 1772-1795년까지 프로이센과 러시아, 그리고 오스트리아에 의해 3회에 걸쳐 영토가 분할되고 국권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었다.

삼국의 통치를 받는 동안 독자적인 정치 체제와 군사력을 갖춘 폴란드 왕국 시대(1815-1918)를 세우기는 하였으나 완전한 독립은 아니었다.

이후 폴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 독립하여 폴란드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축일 11월 19일 성 라파엘 칼리노프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