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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이달의 성인] 성 암브로시오(340-397)

by 파스칼바이런 2010. 5. 29.

 

[이달의 성인] 성 암브로시오(340-397)

윤 클레멘트 신부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보성인인 그는 독일의 트리에에서 태어나는데, 교회 역사상으로 유일하게 세례를 받기 전에 주교가 된 인물이다.

그는 로마에서 공부했고, 그가 밀라노의 주교가 될 당시에 북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리구리아 지방의 주지사였고, 밀라노는 로마제국의 중심도시였다.

당시 교회는 아리아니즘(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설)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교회에는 많은 세속적 힘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당시 밀라노는 아리아니즘을 따르는 주교 아우센치우스가 있었는데, 그 주교가 죽고 나자, 그의 후임을 둘러싸고 가톨릭교회와 아리아니즘을 따르는 세력간에 혼돈과 소요가 있었다.

그때 암브로시오는 밀라노 대성당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평화롭게 주교를 선택해야 한다고 연설을 한다.

그 연설 도중 누군가가 "암브로시오를 주교로!" 하고 외치자, 곧 군중은 모두 그렇게 외치기 시작한다.

그는 두려움으로 숨으려다가 결국에는 군중의 뜻을 받아들인다.

 

그는 일주일 이내에 세례와 견진을 받은 후, 이어서 사제품과 주교서품을 받으니, 그날이 12월 7일이었다.

당시는 아직 교회의 교계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때라서, 그렇게도 사제와 주교서품이 가능했던가보다.

우리 교회는 그의 축일을 그가 지상을 떠난 4월 4일이 아닌, 그의 주교서품 기념일인 12월 7일에 지낸다.

 

세례를 받고 주교가 된 후 그의 생활은 전적으로 변한다.

땅은 교회에, 돈은 가난한 이들에게 다 준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교부들과 성서를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는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심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한다.

또한 그는 그를 만나거나 찾아오는 이들에게 최대의 시간을 내주지만, 그 어떤 외적인 일도 그의 내적인 시간보다 우선하지는 않았다.

로마제국의 전 행정가로서 그는 그 도시의 정치적인 일들에도 영향들을 주게 되는데, 그는 황제 그라치안에게 아리아니즘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 주기를 요청하기도 한다.

한편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회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아우구스티노에게 신학과 교리를 가르치고 387년 부활절 이브에 세례를 준다.

 

그와 그의 교구는 한때 아리아니즘을 신봉하는 황제 발레티안 치세에 어려움을 겪고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신앙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그의 신념과 설교는 굳세고 한결같았다.

그는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테살로니카에서 약 7천명의 군중을 학살한 사건 이후, 그가 회개와 고백성사와 보속을 하기 전에는 성체도 모실 수 없다고 강력하게 강론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동정녀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탁월하였다.

 

그는 많은 책들을 쓰고 남겼는데, 그는 자신이 가르쳤던 것들보다도 어려웠던 시대에 거룩한 교회와 그 가르침에 대하여, 부지런히 돌보았던 사람으로 더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는 그가 평생 믿고 가르치며 지키려던 하늘의 그리스도를 향하여, 57세가 되던 해 그리스도께서 떠나신 성 금요일 날, 이 지상에서의 생을 마치고 복된 영원의 길을 향해 떠났다.

 


 

 축일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Ambr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