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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영성사 - 교부들의 영성 - 성 힐라리오(315?~367) 전달수 신부(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성서를 신앙의 지표로 삼아
프랑스의 쁘와띠에의 저명한 가문에서 출생한 성인은 보르도에서 훌륭한 문법학자들과 수사학자들로부터 고전 문학과 철학을 배운 것으로 보이며 혼인하여 '아브라' 라는 딸을 하나 두었다. 그 후 성서를 읽던 중 하느님에 관한 고상한 표현들과 이교도들의 신화에 드러나는 물질주의에서 차이점을 깨달아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였다. 트리에르의 주교 막시미누스로부터 세례를 받고 교육을 받은 후 신앙생활을 하던 중 쁘와띠에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친아리아파에서 주관한 베지에르의 지방 종교회의에서 아리아파와 논쟁을 벌이던 중 정통파 아타나시오 주교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여 콘스탄씨우스 2세 황제의 명에 의해 프리기아로 추방당했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 신학을 공부하고 서방 주교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책을 썼다. 361년에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후 뚜르의 마르띠노(군인 개종자)를 받아들여 리규제에 수도원을 세워 그를 원장으로 임명하여 수도생활을 권장하였다.
성 힐라리오는 거룩한 삶과 훌륭한 지도와 학문적 업적으로 교회를 부흥시켰다. 그는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강조하여 신앙 생활의 지표로 삼았으며 갈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그리스도교 윤리 생활을 강조하여 생활을 개선시켜나갔다. 가톨릭 교회를 일치와 보편성 그리고 파괴될 수 없는 신자들의 단체로 인정하여 이교도들과 대항하였다. 그리고 삼위일체에 대한 가르침은 훌륭하여 후대의 위대한 학자들인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들도 그의 작품을 인용할 정도였다. 그는 기본적인 교리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을 강화하여 야만족들의 대이동 중에 일어난 아리아파들과의 갈등에 대항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킨 인물일 뿐 아니라 그리스 세계와 라틴 세계의 중개자로서 서방 영성의 선구적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1851년 교황 비오 9세는 이 위대한 성인을 보편 교회의 박사로 공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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