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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그리스도인] 신학 철학자편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상)
1323년 시성된 토마스 아퀴나스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 정통성의 시금석으로 대우 받기도 했다.
"독창적 그리스도교 철학 발전시켜" 진리 연구와 옹호 위해 일생 바치며 '신학대전' '대이교도 대전'등 저술
「스콜라 철학의 왕」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 「공동(共同)의 박사」(Doctor Communis)로 존칭되는 중세 유럽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 그의 이름을 붙인 학파를 초월하여 현대 사상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끊임없는 예지의 탐구」로 표현된다. 연구와 저술과 교수 생활로 일관하면서 진리 연구와 옹호를 위해 일생을 바쳤고 깊은 영성으로 충만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대이교도 대전」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등 방대한 저작을 통해 그리스도교 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인물로 꼽힌다.
거의 모든 학문 영역에서 종합화를 이룩함으로써 중세 사상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는 한편 신(神) 중심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상대적 자율을 확립함으로써 신앙과 신학을 배제하는 인간중심적 세속적인 근대 사상을 낳는 운동의 기점으로 남아있다.
도미니코수도회에 입회
로마 황제령과 프리드리히 2세 영역 경계에 있는 로카세카 성주의 아들로 출생, 5살 때부터 몬테카시노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열네살 되던 1239년 교황 영토와 황제 영토 경계선에 위치한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황제의 군대에 의해 점령당하자 나폴리 대학으로 옮기게 된다.
이곳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학문 연구를 통해 복음 전파를 목표로 삼는 탁발수도회 도미니코회를 접하게 되고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 도미니코회에 입회하게 된다.
그 배경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진리 선포를 향한 열정으로 풀이된다. 신학대전을 통해서도 밝히고 있듯 「가르친다든가 설교하는 일은 관상이 차고 넘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일은 단순한 관상보다 우월하다. … 따라서 갖가지 수도회 가운데 최고의 단계를 점하는 것은 가르치는 것과 설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도회다」(188문 6항)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파리를 거쳐 알베르토 막뉴스 지도아래 쾰른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게 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알베르토의 영향을 받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자기 철학과 신학의 도구로 받아들였다.
이후 알베르토의 추천으로 파리대학 교수 후보자로 추천된 토마스 아퀴나스는 1252년부터 파리에서 성서와 룸베르투스의 명제집을 강의했고 1254년에는 박사 학위를 받아 1259년까지 파리대학에서 강의했다.
당시 신학과 교수의 주요 직무는 성서의 강의 및 학문적 논점에 대한 토론의 주재와 설교였는데 「유(有)의 본질에 관해서」와 정기토론집 「진리에 대하여」 등이 당시 저술한 대표적 저서다.
관례에 따른 3년간의 교수 직무를 마친후 이탈리아로 돌아간 토마스 아퀴나스는 약 10년동안 교황청 및 도미니코회 부속학교에서 교수직과 저작 활동에 전념했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의 사상을 두드러지게 성숙시킬 수 있었던 때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같은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인 모르베카의 길레루므스 번역에 힘입어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 철학의 정교한 연구를 달성했으며 교황 울바노 4세의 요청으로 동방교회와 공동으로 그리스교부 및 교의사의 본격적 연구를 시도했다.
「대이교도 대전」, 정기토론집 「신의 능력에 대하여」, 4대 복음서의 연속 주석 및 「신학대전」 제1부 등이 당시의 대표적 저작이다.
1269년 탁발수도회 배격운동이 일어나면서 이에 대처하기 위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시 파리대학 교수로 취임하게 됐고 작은형제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학보수파 등 3개 파와 논쟁하면서 「신학대전」 제2부, 몇가지 정기 주석과 정기 토론집,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서 주석 등을 펴냈다.
1272년 도미니코회의 새로운 대학 설립을 위해 나폴리로 돌아온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른 저서와 병행하면서 「신학대전」 제3부를 연이어 저술했다.
그러나 1273년 12월 6일 성니콜라오의 축일 미사후 돌연 집필 중단 모습을 보였는데 이에대해 자신은 『나에게 새롭게 계시한 점에 비하면 이제까지 저술한 것은 지푸라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단 선언의 대상 되기도
1274년초 교황의 요청에 따라 병든 몸을 이끌고 리옹공의회로 향하던 중 병세가 악화된 토마스 아퀴나스는 로마와 나폴리의 중간에 있는 포사누바 시토수도원에서 눈을 감았다.
사후 그의 가르침은 동시대에 상당한 새로움으로 다가왔으나 학설 일부는 1277년 파리와 옥스퍼드에서 개최된 이단 선언 대상이 되기도 했다.
1323년 시성된 토마스 아퀴나스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 정통성의 시금석으로 대우 받기도 했다. [가톨릭신문, 2005년 6월 26일, 이주연 기자]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신학·철학자편 - 성 토마스 아퀴나스 (하)
신학대전」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7년이라는 시간을 저작에 바쳤으면서도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완의 책이면서도 신학대전은 「대작」으로 평가받는다.
"신학대전으로 중세학문 집대성"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절대적 근원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도구로 행동"
-창조의 자율성, 고유 활동들을 지니고 있는 다양한 피조물들, 자연의 질서와 아름다움으로 인도하고,
-인간 인격의 수용력, 독립성, 책임감으로 인도하며, -창조에서 드러나고 예수에 의해서 계시되는 하느님의 깊이로 이끌고, -삶과 활동의 절정으로, 그리고 행복이라는 그들의 목표로 인도하며, -삼위일체의 지혜와 사랑에 참여하도록 불림을 받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생명원리를 부여받은 인류에게로 인도한다.
이상은 학자들이 밝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특성들이다.
그의 사상은 어떠한 「새로움」에 압도적 인상을 받았던 동 시대인들에 의해 일부가 이단으로 취급받기도 했으나 결국 아우구스티노를 기원으로 하는 「교부사상」 「아리스토텔레스」 「신 플라톤철학」 「이슬람」 「유다사상」 등의 풍부한 유산을 계승하면서 「아퀴나스적 총체」로 불리는 독창적 사상체계를 확립했다.
또한 그는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통일성을 추구하였으나 이것은 한편 「학」(學)으로서의 신학 정립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율적 학문으로서의 철학적 기초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의 업적을 얘기할 때 많은 부분을 언급할 수 있지만 학자들은 『무엇보다 토마스는 마지막까지 대학의 위대한 스승으로 남는다』고 들려준다.
즉 토마스는 「가르친다」는 것을 가장 숭고한 정신적 삶의 형태라 보았고 진정한 스승은 신입생 입장에서 생각하고 학생 스스로 가지고 있는 진리를 이끌어 낸다고 여겼다. 「신학대전」을 비롯한 그의 역작들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의 과정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신학대전」(Summa theological)은 토마스가 7년이라는 시간을 저작에 바쳤으면서도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완의 책이면서도 신학대전은 「대작」(opus magnum)으로 평가받는다.
3천 개의 논항을 포함하고 있는 신학대전은 흔히 고딕대성당으로 비유되는데 그것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다양한 여러 부분이 상호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한점을 향해 수렴한다는 공통적인 근본 구조 때문이다.
신 창조론, 윤리론, 그리스도 성사 등 전 3부로 구성된 신학대전은 신학적 관점에서 「중세 학문의 집대성」이라 불리며 내용은 1) 존재로서의 하느님, 2) 선으로서의 하느님, 3) 구원받기 위하여, 강생한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타락한 상태의 인류가 하느님에게 도달하는 길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서술 양식도 독특한데 중세 대학 특유의 「토론」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를테면 2669개 항목 모두 「…인가?」라는 의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상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을 모든 피조물들의 절대적 근원으로서 「필연적 존재」로 보았다.
하느님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창조주이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분이 있는 모든 것의 원인이시라는 것이다. 이밖에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은 이러 저러한 분이 「될 수 없다」는 것 뿐 이라고 밝혔다.
또 「영원성」이란 하느님에게만 속한 것으로 하느님의 전능이란 당신이 뜻하는 바를 무엇이든 발생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설명했다.
피조물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주장했는데 그러한 의견은 신학 안에서의 인간 이성의 위치, 인간의 자유와 하느님의 전능, 정치 사회에 관한 그의 사상을 결정하는 주요 맥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토마스는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에게서 독립적이기 때문에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자율적이라고 밝혔고 창조주의 활동은 피조물의 활동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조물들이 자율적으로 존재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피조물이 자유로운 것은 하느님의 활동에도 불구하고도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활동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라는 사고를 폈다. 즉 자유로운 행동들은 결국 하느님에 의해 일어나는 피조물들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자유란 하느님과의 어떤 거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원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하느님 능력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하느님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은 곧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구별들을 함께 초월하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으로 주장했고 모든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도구로서 행동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피조물을 서로 대조적인 두 개의 것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떠한 피조물도 하느님에 필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는 육체로 하여금 인간 육체의 작용을 하는 인간 육체를 만드는 일 그 이상의 일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를 초월하면서, 또 그러한 활동들의 원리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체가 되더라도 영혼은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그 자체로 인간이 아니며 부활이라는 계시 교리가 없다면 인간에게 있어 죽은 자의 소생이란 말할 수 없다」는 바를 명백히했다.
[가톨릭신문, 2005년 7월 10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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