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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해 기획 - 사제(司祭)의 사제(師弟)]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모 신심 깊었던 '자비의 순교자'
1941년 7월 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한 수감자가 탈출했다. 수용소 규칙에 따르면 한 사람이 탈출하면 다른 죄수 10명이 끔찍한 지하 감방에서 굶어 죽어야 했다.
수용소장은 죄수들을 불러 세워 놓고 아사감방으로 갈 희생자 10명을 골라냈다.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울며, 동료들과 마지막 작별을 나눴다. 그런데 10명에 속하게된 ‘프란치스코 가조브니체크’라는 사람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말했다. “저에게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죽기 싫어요!”
그때였다.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수인번호 16670,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Maximilian Kolbe)였다.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지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서 하나 둘 죽어갔다. 하지만 콜베 신부는 2주 이상 물과 음식 없이 생존했다. 그러자 독일군은 콜베 신부를 포함한 나머지 생존자 4명에게 독약을 주사했다. 1941년 8월 14일, 콜베 신부 나이 47세였다. 콜베 신부의 시신은 이튿날인 8월 15일, 수용소내 한 화장장에서 소각되었다. 평생 동안 깊은 성모 신심 안에서 머물렀던 콜베 신부의 몸은 그렇게 성모승천대축일에 한줌의 재가 됐다.
생애
1894년 1월 7일, 폴란드인 부부 율리오 콜베와 마리아 다브로프스카는 눈이 총명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둘째 아들 ‘콜베’를 얻었다. 태어난 후 바로 ‘라이문도’라는 세례명을 받은 콜베(‘막시밀리아노’라는 이름은 훗날 수도회 입회 뒤 착의식에서 받은 이름이다)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유난히 강한 성모 신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07년에 콜베 성인은 14세의 나이에 라부프 소신학교에 들어갔고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다. 이때 장상들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인 콜베를 로마로 유학 보낸다(1912년).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신앙적으로도 갈수록 깊이를 더해 가는데, 특히 1917년 폐결핵을 앓던 중에도 동료 수사 6명과 함께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를 창설했다. 성모의 기사가 실행해야 할 것은 기도, 좋은 표양, 고행, 그리고 노동이었다. 이듬해인 1918년 4월 28일 사제 서품을 받은 콜베 신부는 1919년에는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해 고국인 폴란드로 귀국해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콜베는 본격적인 ‘성모 기사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22년 1월에 잡지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를 창간(이 잡지는 현재 한국에서도 발행되고 있다)했다. 처음 5000여 부 발행되던 잡지가 1925년 1만 부, 1926년 4만 5000부, 1927년 5만 부, 1935년 70만 부, 1940년에 100만 부 등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콜베 신부는 또 1935년에 가톨릭신문을 발행했는데 이 신문도 크게 성장했다. 콜베 신부는 이 모든 것을 성모님의 전구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겼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일본 학생들과 만나 대회를 나눈 콜베 신부는 동양 선교에 대해 사명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즉시 일본 선교를 희망, 1929년 12월 30일 폴란드를 떠나 이듬해 4월 24일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그는 성모의 기사를 발행했으며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였다.
이후 6년 후, 콜베 신부는 폴란드의 성모의 마을 원장에 선출되어 폴란드로 귀국한다. 이때 그는 전쟁으로 인한 심한 박해와 시련, 특히 자신의 고난을 자주 예고했다고 한다. 결국 1939년 9월 독일 군대가 폴란드를 침범했으며, 콜베와 동료 수사들을 체포해 수용소에 억류했다가 석방했다. 콜베 신부는 이후 1941년 2월 17일 유대인을 도왔다는 이유로 다시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파비악 형무소에 갇혔으며 2월 28일 아우슈비츠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6개월 후 생을 마감했다.
콜베 신부는 1903년 일본으로 가기 위해 한국의 부산에 잠시 들른 일이 있다. 그때 동생 신부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멈춘 부산에서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린 후 배를 타려면 4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을 이용해 미사를 드리고 싶었다. 한 경찰관으로부터 그 도시엔 여섯 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다는 것과 성당은 한국을 통틀어 세 개쯤 될까 말까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언제쯤 성모께서 이처럼 아름다운 나라에 당신 아드님의 나라를 세우실까?”
- 콜베 신부는 1971년 10월 17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비의 순교자’(Martyr of Charity)라는 칭호로 시성하였다.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깊었고, 또 성모 마리아에게 매우 특별한 공경을 바친 성인이다.
[사제의 해 기획 - 사제(司祭)의 사제(師弟)]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하)
아우슈비츠에서 '평화' 전도한 사제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 힘들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콜베 신부는 엄격한 금지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 영적 훈화, 상담 등을 통해 지옥에 평화를 심는데 전력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잔학한 장소에서 사제직 실현을 위해 땀 흘린 것이다. 그는 미움을 사랑으로, 모욕을 용서로, 저주는 기도로 바꾸어 나갔다. 비록 사제로서의 행동이 때론 발각되어 심한 고문을 받기까지 했지만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는 복음 선포 그 자체였다. 콜베 신부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콜베 신부는 소년 시절, 예사롭지 않은 신비체험을 했다. 어느 날 성모님이 두 개의 상자를 들고 그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는 흰색 상자였고, 다른 하나는 붉은 색 상자였다. 성모님은 다정스럽게 콜베를 바라보며 어느 것을 원하시는지 물으셨다. 콜베가 두 상자가 무엇을 뜻하느냐고 묻자 성모님은 흰색의 상자는 순결을 뜻하고, 붉은색은 순교를 뜻한다고 하셨다. 설명을 들은 콜베는 둘 다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성모님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사라지셨다.
콜베 신부의 일생은 성모님과 함께한 삶이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시복식 강론을 통해 콜베 신부를 “마리아의 신비를 이해하고 공경하며 찬미했던 위대한 성인들과 긴 안목을 지닌 성인들의 반열에 계신 분”으로 선언했다. 콜베 신부는 특히 원죄 없으신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남달랐다.
“원죄 없으신 성모.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이상입니다. 우리가 성모께로 나아가 성모를 닮은 자가 되며 온전히 제한 없이 성모의 소유물이 되는 것, 또 성모께서 우리의 마음과 전 존재를 지배하시고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통하여 사시고 일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이상입니다.”
“원죄 없으신 성모를 알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정의(定義)나 구별, 의논 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보다는 겸손한 기도와 일상생활에서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체험이 더 중요합니다. 이 체험을 통해 원죄 없으신 성모를 보다 더 잘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합시다.”
특히 이 운동은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라는 잡지를 통해 세상에 퍼져 나갔다. 콜베 성인이 설립한 성모의 기사회는 1918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로부터 인준되었으며, 1926년 비오 11세는 이 기사회에 특정한 권한과 대사를 허락했고, 1927년 4월 24일엔 전 세계에 이 신심 단체의 지부 설립을 허락했다. 우리나라에도 1976년 5월 20일 대구대교구장으로부터 교구 내에 지부 설립 승인을 받은 것으로 시작하여 인천교구(1982. 2. 16), 마산 교구(1986. 9. 3), 서울대교구(1986. 12. 12), 부산교구(1986. 12. 20), 대전교구(1986. 12. 30), 전주교구(1987. 1. 14) 등 여러 곳에서 지부 설립을 승인 받아 현재 수만 명의 회원들이 모임을 가지며 활동하고 있다.
이 운동의 중심은 ‘성모를 통하여 성모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모 기사회 회원들은 하느님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의 발전을 위해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고 날마다 봉헌을 새로이 하면서 봉헌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기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가지고 생활에 임한다. 모두 콜베 성인의 모범과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콜베 신부는 모든 것을 성모님 안에서 이해했고, 성모님의 전구에 전적으로 의탁했다. 콜베 신부에게 있어서 성모님은 구원사 안에서 주님의 종으로서 구원 사업의 협력자로서 성모님의 위치와 역할을 분명히 이해하며 그에 맞는 존경과 예우를 드린다. 그분은 인간이 예수께 나아가기 위하여 통해야 할 전구자이시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도록 해주시는 협력자이시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막시밀리아노 성인께 고통당하기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기쁨을 가르쳐주셨습니까? 그분은 다름 아닌 성인께서 모든 것을 의탁하신 우리의 성모님이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 의탁하면,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기쁨을 우리에게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의 기도
원죄 없으신 잉태여, 죄에 물듦이 없으신 시초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와의 자녀들도 수태 전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저들에게도 잉태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당신의 잉태되심은 그들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원죄에 물든 잉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만은 원죄 없으신 잉태입니다.
원죄 없음은 피조물로서는 최고의 완전함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하느님과 닮으신 분임을 뜻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목적은 조금씩, 조금씩 창조주와 닮은 자로 성장하여 끊임없이 보다 완전하게 하느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착한 사람, 덕망 높은 사람 그리고 성인들을 보고 배웁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누구나 불완전할 뿐입니다. 오직 그분, 곧 원죄 없으신 성모만이 그 탄생의 순간부터 어떠한 죄도 아시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연히 본받아야 할 분, 우리가 당연히 곁에 모셔야 할 분은 원죄 없으신 성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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