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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크레타의 성 티토(Titus) 주교

by 파스칼바이런 2010. 12. 23.

크레타의 성 티토(Titus) 주교

St. Titus, E or San Tito Vescovo

신분: 바오로의 제자, 주교

활동지역: 크레타(Creta)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디도, 디또, 티투스

  

 

 

성 티토는 성 바오로에 의하여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 

바오로는 그를 코린토로 파견하여 오류를 시정케 하면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게 하였다.

그 후 그는 바오로에 의하여 크레타의 주교로 축성되어 바오로의 사업을 이어나갔다.

그 후 그는 달마시아를 방문한 뒤 크레타로 돌아와서 운명한 듯 보인다. 

그는 법률가 제나가 쓴 "티토 행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가 바오로로부터 받은 편지의 주요 내용은 영적인 권고를 비롯하여 착한 목자가 지녀야 할 자질 및 크레타 신자들에게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그는 그리스인으로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났다.

티토는 바오로와 가까운 친구이자 제자였으며 동료 선교사이기도 했다.

티토는 바오로와 훌륭한 친구이자 행정가이며 평화의 전파자였다.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디도와 그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으며 얼마나 큰 동료의식으로 복음을 설교했는지 알 수 있다.

바오로가 고린토 교회와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디도는 그의 ’준엄한 편지’를 가지고 갔다.

티토는 불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바오로는 티토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티토서를 보면 디도가 그레타섬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교회를 조직하고 악습을 개선하고 장로들을 임명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관리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 티토는 성 디모테오와 같이 성 바오로 사도에 의해 개종한 후 가장 사랑받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일에 지혜로웠고 그의 활약은 참으로 뛰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성 바오로의 서간에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것은 극히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 티토는 그리스인인데 그의 출생지는 명백치 않다.

성서에 그에 대한 기사는 안티오키아에 있을 때부터 시작했다.

그는 앞서 말한 대로 성 바오로의 감화로 개종했다.

바오로 사도가 그를 "공통된 신앙에서의 나의 친아들"이라고 부른 점으로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51년 성 바오로는 티토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거기서는 중대한 문제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그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는 이전 유다교를 믿던 사람도 적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교에 개종한 후도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많이 있었으므로 그들도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되느냐 안 되느냐가 큰 문제가 되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편으로서 지금까지 이교도 출신의 신자들에게도 그와 같이 가르쳐 왔는데 이제 와서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성 베드로는 마침내 교황의 무류지권(無謬之權)으로 개종자는 유다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단정했다.

그 결과는 티토에게도 중요했다. 그 이유는 그도 전에는 이교도였던 연고이다.

 

티토는 그 후 다시 안티오키아에 돌아가서 성 바오로가 두 번째의 전도 여행을 떠나 프리기아 및 갈라디아를 지나 아테네, 고린토의 방면에 갔을 동안 그곳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뜻으로 크리스찬이라고 칭한 것은 아티오키아의 신자가 처음이었다.

아티오키아의 교회는 성 바오로가 안 계시는 동안 신앙의 기초를 견고히 하고 신자의 수를 증가시켰다.

이것은 티토의 활동이 절대적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이유는 성 바오로는 그러한 결과를 보고 경건하고 열심히, 또한 지혜로운 자에게만 맡길 수 있는 고린토 교회의 주교라는 직분을 그에게 위탁했기 때문이다.

 

고린토라는 곳은 성 바오로가 손수 전교하고 교회를 설립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그러므로 고린토 교회의 신자들은 신앙으로 뭉치지 못하고 가장 수치스러운 죄까지 공공연하게 범했다.

성 바오로는 이러한 슬픈 소식을 듣고 스스로 그곳으로 가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마침 두 번 째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세 번째의 전도 여행의 준비 중에 있었으므로 도저히 여가가 없었으므로 다음은 그의 제자인 티모테오와 에라스토를 파견했지만 그들의 활동도 그 교회를 구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고린토에서 약간 안심할 만한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므로 성 바오로는 될 수 있으면 후에 자신이 가 보려고 생각했지만 즉각 어떤 인망 높은 이를 보낼 필요를 느끼고 티토를 선택해 보내기로 했다.

 

처음에 티토는 책임의 중대함을 생각하고 주저했지만, 성 바오로가 이웃을 사랑하는 덕을 가르쳐 예루살렘이나 아카이아에 있어서 곤란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 기부를 모을 것을 의뢰했으므로 그는 마침내 승낙을 하고 즉시 동반자를 데리고 출발했다.

성 바오로는 트로아스에서 그와 다시 만나려고 했으나 그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에까지 가서 티토를 만나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티토는 모든 일을 현명히 처리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종종 같이 여행하며 크레타 섬에도 갔다.

그리고 그곳에 몇 군데의 교회를 세우고 티토가 주교로서 머물렀다.

성 바오로는 안심하고 그 지방을 떠났지만, 결코 사랑하는 제자를 잊지 않고 2년 후에 티토에게 한 통의 서간을 보냈다.

현재의 성서 안에 있는 티토서가 바로 이 서간이다.

그 서간 중에서 성 바오로는 주교로서의 생활 및 임무에 대해서 훈계하고 지도했으며 한 번 더 사랑하는 제자를 만나고 싶어서 그를 키프로스로 불러 거기서 한 겨울을 같이 지냈다.

 

다음해 그는 티토를 달마디아로 파견하고 전교하도록 했으나 그것도 잠깐 동안 이었고 오래지 않아 티토는 크레타로 다시 돌아와 그 섬 및 부근의 작은 섬에서 널리 복음을 전하는 것에 즐겨했다.

실로 그는 사도 성 바오로의 제자로서의 적합한 경건하고, 열심하며, 영리함으로 유익한 인물이었고, 또한 극히 희생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강론과 깨끗한 행동은 얼마나 사람들을 선으로 인도했는지 모른다.

그가 승천한 때는 94세라는 고령이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축일 1월 26일 성 티토(Ti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