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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수난 복음을 묵상하며.....

by 파스칼바이런 2011. 4. 18.

수난 복음을 묵상해며.....

 

 

이제 성주간이 시작되며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이어지고

이를 묵상하게 된다.

인류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사업에 대하여 인간적인 불만과 의혹을 가진다는 것이 불경스럽게 생각되나 나름 두서없는 글로서 몇 자 적어 본다.

 

하느님이시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삼십대의 미혼 총각으로 온갖 조소와 멸시, 모욕을 당하시고 끝내는 끔찍한 십자가의 고통속에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

 

창조주 하느님으로서 왜 하필이면 피조물인 인간의 나약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는가?

기왕이면 좀 더 폼나고 멋지게 몇년 몇월 몇일 몇시에 오시겠다고 미리 예고 하시고 구름 타고 짠- 하고 나타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었다면 뜻하신 인류구원사업이 참 편하고 쉽게 목적하신 바를 잘 이루셨을텐데.....

 

만일 예수님께서 그렇게 오셨드라면 이 세상에 안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너도 나도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하시는대로 기쁘게 받아 들이고, 무조건 순종하며 따르고, 지극 정성으로 섬기면서 너도 나도 구원사업에 앞장 서 동참하였을텐데 말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성모님과 요셉 성인도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셨을텐데....

또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고 죄책감에 자살하지도 않았을텐데.....

그리고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그리 슬피 울지도 않았을텐데.....

 

또한 예수님을 앞장 서 매도하고 죽음으로 몰고간 사두가이와 바리사이인들의 어리석음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유다인들의 지도층이었던 율법학자나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며 나름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질타하신 대로 위선적인 면과 부조리는 있었지만 당시 나라를 잃고 상심에 빠진 유다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러한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느님의 아들을 자처하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자신들에게 험한 비판을 퍼붓는 낯선 젊은이를 그대로 못본체하였다면 그것도 무책임한 행동이요,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이요, 방임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아마 똑같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앞장 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을 크게 외치며 나부터라도 예수님께 침뱉고 조롱하는 일에 동참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입장을 바꿔 오늘날 그러한 상황이 재개된다면 어떨까?

만일 내가 살고 있는 인천시 효성동 어느 목수집에 예수님께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시어 우리에게 오신다면, 우리는 진정 그를 받아 들이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가 효성동과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하느님의 아들이라며 너희 인간들을 구원하러 왔다고 떠들고 다닌다면 아마 우리는 '미친놈' 소리 부터 내밭으며 경멸하고 핍박할 것이다.

물론 나도 절대 믿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이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어느 누구도 진정 그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당시 상황에서 오직 하느님만 믿어왔던 그 당시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아들로 자처하는 목수의 아들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중죄인으로서 마땅히 능지처참하여 죽여야만 할 큰 죄인이었던 것이다.

 

고로 유다 이스카리옷, 대사제 카야파, 총독 빌라도, 율법학자,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일조한 일등공신들이 아닐까?

 

어쨌든 예수님의 수난시기에 어리석기만 한 인간이 하느님의 참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우둔함을 깨우쳐 주십사고 기도할 뿐이다.  아멘.

 

그러나 좀 더 성경 말씀을 묵상해 보면 '예언자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마태 26, 56)' 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부족한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