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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십자가 중의 십자가

by 파스칼바이런 2011. 8. 6.

십자가 중의 십자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때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오 16장 24-28절>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그 누구나 예외 없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 감당해내야 할 십자가 가운데 가장 큰 십자가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나이 먹어감에 따라, 노화가 시작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힘에 의해 무대 뒤로 사라져야만 하는 것, 점차 이 세상의 주역에서 조연으로, 중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나야만 하는 것, 또 그래서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고독이나 소외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충만했던 삶의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러면서 또 기력이 약해지고 병들고, 가까이 지내던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이 세상을 떠나고, 언젠가 하루 온종일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느끼는 소외감이란 참으로 큰 십자가일 것입니다.

 

더 한 것은 노환에 시달리며 사회적으로도 또 가정 안에서도 아무런 역할도 기여도 하지 못하며, 때로 상황이 더 악화되어 그 누구의 도움 없이 거동하지 못하게 될 때, 그리고 오직 남은 것이라고는 죽음뿐일 때 그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런 충격이 훨씬 덜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신앙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무리 소외감 느낀다할지라도 조금만 잘 견디면, 그래서 충실히 이 세상 소풍 끝나면 더 아름다운 세상, 더 충만하고 행복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거기는 더 이상 끔찍한 고통도 무거운 십자가도 없다는 것, 거기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 자비 안에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살수 있다는 것...이런 희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이 들수록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사 안에서 노년이라는 고통을 너무도 영웅적으로 잘 극복한 분이 한분 계십니다.

 

그 유명한 헨리 뉴먼 추기경님이십니다. 이분은 원래 가톨릭 신자가 아니셨지만 개신교로부터 개종하셔서 가톨릭 성직자가 되셨고 추기경 지위까지 오르신 입지전적 인물이셨습니다.

연세 드실수록 추기경님의 기도에 대한 애정, 특별히 가톨릭 성직자들이 의무적으로 바치는 성무일도에 대한 그분의 애정은 정말 대단한 것이셨습니다. 주로 시편으로 이루어진 이 성무일도를 너무도 좋아하신 나머지 이런 표현까지 쓰셨습니다. “성무일도는 내 기쁨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연세가 더 드시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도 많은 독서와 집필을 하신 나머지 말년에 이르러 거의 실명상태에 빠지게 되셨습니다. 그 순간 추기경님을 지척에서 간호하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만큼 그분께서 큰 실망과 좌절에 빠졌던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실망에 빠지셨겠습니까? 단지 눈이 멀음으로 인해 생기는 육체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그분께서 그렇게 좋아하셨던 성무일도 기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좌절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성무일도 대신 그분께서는 다른 영적인 무기를 손에 드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묵주였습니다. 실명 후 추기경님께서는 묵주를 손에 드시고 온종일 묵주기도로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관상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이 거룩한 기도의 사람, 하느님의 사람을!

추기경님께서는 어떤 처지에서든, 어떤 십자가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으시고 기도로서 하느님을 찬미했던 사람이셨습니다.

 

때로 받아들이기가 힘들겠지만 십자가를 주시는 분이 하느님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지고 가는 매일의 십자가 무게가 지나치게 무겁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 십자가를 떠받치고 계심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한 세상 살아가는 동안 매일의 십자가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으셨지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면서 우리를 따뜻이 위로해주심을 자각하면 좋겠습니다.   

<양치기 신부님의 오늘의 묵상에서>